[中企가업승계]"오너는 소유만, 전문경영인 둬야"

독일 베버 교수가 말하는 장수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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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정민 기자]국내에서도 대를 잇는 장수기업이 탄생하려면 정부 지원과 함께 기업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오너일가가 소유와 경영을 맡아야 한다는 생각은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바라보는 부정적인 여론을 부채질할 뿐이다.

독일 히든챔피언 전문가인 빈프리트 베버 만하임응용과학대학 교수(사진)는 지난 해 중기중앙회 주최 강연에서 "가업이 3세대를 넘어가면 전문경영인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의 가족소유경영기업은 창업 이후 3~4세대로 접어들면 소유와 경영 분리를 통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는 게 일반적"이라며 "실제 5세대가 넘어서면 가족경영을 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그는 히든챔피언의 가족소유경영 변천 과정을 3단계로 설명한다. 1단계는 창업단계로 가족이 소유와 경영을 함께 한다. 2단계는 가족소유경영과 전문경영인체제가 혼합된 형태다. 3단계는 가족은 소유만 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소유-경영 분리 형태다.

머크그룹은 우리 기업들에게 좋은 본보기다. 166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남쪽 담스타트에서 '천사약국'으로 작게 가업을 시작한 머크그룹은 현재 13대를 거듭하며 세계 67개국에 4만여명의 직원을 둔 글로벌 의약ㆍ화학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103억유로(14조4000억원).

머크가의 11대 손인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 현 머크 파트너위원회 회장은 가업 성공의 비결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택했다. 그는 "소유한다고 반드시 경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머크 가문이 70%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가족들은 '투자자'가 아닌 '기업가 정신'으로 회사 일에 관여한다"고 설명했다.머크가문의 전체 250여명 중 130여명이 주주로 참여해 회사 지분 70%를 갖고 있지만 1920년대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하버캄 회장은 "사업을 확장하면서 가족 내에서 인재를 찾기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일종의 입양 가족'인 전문경영인들의 능력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기지만 13명의 가족으로 구성된 가족위원회와 5명의 가족이 참여하는 파트너위원회가 이를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스웨덴 경제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 그룹도 5대, 157년째 이어지는 투명경영과 적극적인 사회공헌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발렌베리 그룹의 지배구조는 후계자들이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주식은 투자ㆍ지주회사인 '인베스터'가 갖는다. 이 회사의 주식들을 다시 발렌베리가의 4개 공익재단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이들 재단이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기업 이익은 배당 형태로 투자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통해 4개 공익재단으로 돌아간다. 발렌베리그룹은 이 중 80% 이상을 기초기술과 학술지원 등 공익사업에 사용한다. 경영권은 일가가 갖고 있지만 소유권은 사회에 있는 형태다.



이정민 기자 ljm1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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