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바빌론 공중정원의 허망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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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2006년 8월. 정부는 경부고속철도(KTX) 사업으로 4조5000억원의 채무를 떠안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ㆍKORAIL)의 열악한 재무상황을 해결할 방안으로 묘수를 떠올린다. 금싸라기 땅으로 평가받는 용산의 코레일 소유 철도정비창 부지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곳에 100층이 넘는 초고층 랜드마크를 비롯, 세계 최대 규모의 상업시설을 유치하고 호텔과 고급 주거단지를 끌어들여 서울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핵심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코레일 입장에선 도랑 치고(부채도 털고) 가재도 잡는(개발이익도 얻을 수 있는) 매력이 넘치는 사업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좌초 위기를 겪기 시작할 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적극 지지에 나섰다. 'MB노믹스'의 강남ㆍ북 균형발전 정책 핵심에 용산사업을 넣은 것.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역시 대표 정책인 '한강르네상스'에 용산개발사업을 연계했다. 용산 개발사업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단박에 용산은 최대 투자 유망지역으로 꼽히며 선호도에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던 강남구도 제쳤다. 용산구가 강북의 '용(龍)'이 아닌 강남을 넘어설 날도 멀지 않아 보였다.

2011년 10월11일. 31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사업 추진 4년 여만에 첫 삽을 떴다. 온통 장밋빛이었다. 이날 기공식에서 허준영 당시 코레일 사장은 세계적인 명품도시를 만들겠다고 천명했고 시행사인 김기병 드림허브 회장도 핵심관광명소로 키우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아시아의 맨해튼' 용산구가 용틀임하는 순간이었다.하지만 장밋빛 전망과 기대가 사그라드는 데는 약 1년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 3월13일 금융이자 52억원을 해결하지 못해 사업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4월8일에는 최대 주주 코레일이 사업을 접겠다고 밝혔다. 설마 설마 하던 일은 현실이 됐다.

그리고 2013년 9월5일. 청사진 발표 8년 만에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코레일은 이날 땅값으로 받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과 자산담보부증권(ABS) 원금 1조197억원을 모두 갚아 길고 길었던 꼬리표에 종지부를 찍었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던 용산국제업무지구는 '단군 이래 최대 실패작'으로 남게 됐다.

공사 한 번 하지 못한 채 파산한 용산개발사업은 무엇을 남겼을까. 1ㆍ2대 주주가 네탓 공방만 하다 결국 1조원 넘는 돈을 그대로 허공에 날렸다. 날아갈 돈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출자사들과 용산주민들이 낸 소송이 남았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들의 꿈도 함께 파산시켰다. 그 중 서부이촌동 주민 2200가구가 대표적이다. 이들 가구 상당수는 2007년 8월 이주대책기준일 공고 후 재산권 행사가 묶여 있다. 집을 팔지도 못한 채 빚에 짓눌려 살아왔다. 전체 절반 이상이 평균 3억원 이상 빚을 진 상태다. 나라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국제 공모를 통해 선정한 건축설계안을 써먹지도 못해 대외 신뢰도를 추락시켰다.

빈민가를 바꿔 금융중심지로 키운 영국 런던의 '독랜드'나, 복합재개발 성공사례로 꼽히는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를 꿈꾼 매머드급 개발은 일장춘몽에 그쳤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바빌론 공중정원이 한국에서 실현시키려던 허망한 미련을 이제는 접어야 한다. 남은 건 '네 탓 공방'이 아닌 관련자들의 책임있는 자세다. 우리사회의 심각한 갈등 요인 중 하나를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정착되길 바랄 뿐이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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