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페이스]구두닦이 출신 아이맥스 대부, 中완다와 손 잡았다

리처드 겔폰드 아이맥스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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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여덟 살 때 구두닦이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16세 때 뉴욕에서 스포츠 월간지를 창간했다. 학생들을 판매원으로 고용했고, 가판과 정기구독까지 합쳐 발행부수를 2만5000부까지 늘렸다.

이만하면 타고난 사업가다. 하지만 그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스토니부룩대학을 거쳐 노스웨스턴 법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다 로펌으로 옮겼다. 로펌에서 인수?합병(M&A) 등 업무를 자문하다 투자은행 설립을 도왔다. 그러던 중 사업가 본능이 다시 꿈틀거렸다. 그는 회사를 인수해 직접 경영하기로 했다. 이 결심을 실행에 옮겨 아이맥스를 사들였다.

리처드 겔폰드(58?사진) 아이맥스 CEO가 뉴욕타임스(NYT)와 BBC 등 언론매체에 들려준 얘기다.

겔폰드가 아이맥스를 인수한 것은 약 20년 전인 1994년이었다. 아이맥스 기술은 캐나다 영화제작자들이 1969년에 개발했고, 아이맥스 영화는 이듬해 처음 상영됐다. 하지만 겔폰드가 인수하기 전까지 아이맥스는 자연?과학 다큐멘터리에 머물렀다. 겔폰드는 아이맥스를 상업영화 시장으로 이끌었다. 이 전략을 장기적으로 추진했고, 최근 들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이맥스는 지난해 매출 2억8400만 달러에서 순이익 41만 달러를 남겼다. 아이맥스 매출은 영화 제작과 판매, 판매 형식 임대, 일반 영화를 아이맥스 방식으로 전환하는 디지털미디어리마스터링(DMR) 서비스, 아이맥스 영화 매출 분배 등에서 나온다.

아이맥스는 판타지아2000과 폴라 익스프레스, 아바타 등 세 편을 발판으로 도약했다. 특히 아바타는 150개 상영관에서 2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안겨줬다.

상업영화를 공략하는 전략은 결국 주효했지만, 실행 방법은 수정을 거쳐야 했다. 겔폰드는 초기에는 기존 영화판을 돌며 아이맥스 방식으로 촬영하고 아이맥스 전용 영화관을 짓는 방안을 협의했다. 하지만 투자규모가 막대해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두 사람은 접근을 바꿔, 일반 영화를 아이맥스로 바꾸고 일반 영화관에서 아이맥스 영화를 상영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비용이 10분의 1 아래로 줄자 아이맥스 영화와 상영관이 늘기 시작했다.

전세계 아이맥스 상영관은 2008년 150개에서 700개로 증가했다. 미국에 152개, 중국에 126개가 있다. 겔폰드가 기대를 거는 시장이 중국이다. 아이맥스는 중국 완다 그룹과 손잡고 중국의 아이맥스 상영관을 2020년까지 120개 추가하기로 했다. 겔폰드는 지난달 말 이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계획이 실행되면 아이맥스가 중국에서 미국에서만큼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겔폰드는 첫째 결혼에서 딸 둘을 뒀고, 2010년에 대학 동문인 페기 보나파체와 재혼했다.

겔폰드는 그런데 왜 여덟 살 때 용돈을 벌 생각을 했을까? 우크라이나에서 이민온 그의 부친은 모피 가공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공장에 들렀다가 감독이 부친에게 일할 때라고 지시하는 장면을 보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구두닦이 외에 잔디를 깎고 직물회사 발송 부서에서 일했다. 돈을 벌면서 대학에 다녔고, 그러면서도 3년만에 졸업했다.

그는 “보이는 만큼 나쁜 것은 아니고, 보이는 만큼 좋은 법은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는 NYT 에세이에서 “나는 인생과 경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며 “괜찮은 접근이었다”고 들려줬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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