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영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는 듯이 비틀거리며 마당에 있는 수돗가로 가서 양동이의 물을 벌컥벌컥 삼켰다. 한참동안 물을 마신 영구는 그제야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옆으로 맥없이 픽하고 쓰러졌다. 잠시 떨리던 몸도 곧 잠잠해졌다. 그것이 하림이 처음으로 본 가장 가까운 죽음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정말 기가 막힐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몇이 나타나 마당에 큰 솥을 걸어놓고 물을 끓였다. 그리곤 곧 영구의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쥐약 먹은 쥐를 먹은 터라 내장은 다 추려내었다. 하림은 그들의 어깨 틈새로 허옇게 가죽이 벗겨져 나간 영구를 보고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내장을 추려낸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영구를 큰 솥에 넣고, 된장과 마늘, 깻잎 등 각종 야채를 넣고 몇 시간이고 삶고 있었다. 허연 김과 함께 풍겨나오는 고기 삶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누군가 소주를 한 박스나 들고 왔다. 곧 오랜만에 푸짐한 술판이 벌어질 것이었다. 하림은 그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날 밤, 근처 친구집에서 자는 동안 꿈을 꾸었다. 그런데 어른들의 얼굴은 죄다 금방 지옥에서 나온 도깨비 형상을 하고 있었다. 벌건 얼굴의 뿔난 도깨비들이 둘러앉아 자기네들끼리 뭐라뭐라 시끄럽게 지껄이며 개고기를 뜯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하림은 개고기는 물론이고 다른 고기도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댈 수도 없었다. 불쌍한 개, 영구는 그렇게 땅 속으로가 아니라 어른들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하긴 이미 죽은 몸이니 차라리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땅 속으로 가든 배 속으로 가든, 종국에는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었다.
이불 밑에 누워서 이런저런 도깨비 같은 생각을 떠오르는 동안, 하림은 점점 추워오는 것을 느꼈다. 감기란 놈은 일단 찾아오면 그냥 쉽게 물러가는 법이 없다. 정점을 찍을 때까지 알피엠을 최대한 높여가기 마련이다. 그럴 땐 내버려두고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뼈마디에 파고드는 한기가 뼈를 마디마디 해체라도 시키듯 분질러댔다. 마치 숙련된 고문 기술자의 솜씨 같았다. 이마에 진땀이 맺혔다.'그가... 그다!'
하림은 꽁꽁 앓으면서 조금 전에 벌어졌던 광경을 악몽처럼 떠올렸다. 그 역시 도깨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보았던 도깨비는 그 옛날, 영구를 보신탕 삼아 삶아먹고 있던 그 도깨비들과는 달랐다. 그는 사악한 형상을 하고 있었고, 잔인하고 무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도깨비가 그였다.
어스름 속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던 사내. 그는 분명히 며칠 전 아침에 보았던 수도 고치러 온 사내가 틀림없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엽총으로 개를 쏘아죽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윤여사 고모할머니 집 개, 여름이와 가을이도 그 사내가 죽인 것이란 말이 된다. 또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울타리를 넘어와 잔디밭에다 똥오줌을 누고가는 바람에 이층집 영감이 순간적으로 격분해서 쏘아죽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치밀한 음모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비록 사람은 아니라 하더라도 살아있는 짐승을 향해 총질을 해댄다는 것은 어지간한 감심장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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