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메아리 없는 '政' 외침.."지켜지는 게 없네"

22일 오후 서울시내 주요 유흥가 일대 모습. 정부가 네온사인 간판 규제, 문 열고 냉방 단속, 음식점에서의 흡연을 규제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22일 오후 서울시내 주요 유흥가 일대 모습. 정부가 네온사인 간판 규제, 문 열고 냉방 단속, 음식점에서의 흡연을 규제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정부의 각종 정책이 국민들의 무반응으로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고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치고 있었다. 에너지 과다 사용으로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에 대한 공포는 커지고 있지만 국민들의 에너지 절약은 아주 먼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금연제도 역시 겉돌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과태료를 최대 500만원까지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 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2일 오후 서울 신천과 강남역 유흥가 일대. 거리는 네온사인 조명을 켜놓지 않은 업소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불야성을 이뤘다. 입구 등에 총 4개의 네온사인 조명을 켜 놓은 노래방 주인 김경석(65·남)씨는 "50m 사이 노래방이 10개나 있다보니 네온사인을 켜 두지 않으면 손님이 안들어 온다"고 말했다. '네온사인 규제와 과태료에 대해 알고 있냐'고 질문하자 김씨는 "당연히 알고 있지만 내야할 과태료보다 매출 손실이 더 커서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또 다른 노래방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노래방 주인 박경진(42·남)씨는 "근방에 노래방이 10여 곳이 있는데, 그 중에 정부 지침에 따라 LED 조명으로 바꾼 곳은 딱 2곳 뿐"이라 며 "나도 큰 맘 먹고 바꾼거지 돈이 많아서 바꾼 게 아니다. 지난달 월세도 못냈다"고 한숨을 쉬었다. 불볕더위에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손님들이 들어간 방에는 에어컨을 켜고, 카운터에는 선풍기를 돌리는 박씨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골목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음식점들은 네온사인 간판은 밥줄과 다름없다고 하소연 했다. 전집을 운영하는 최진주(45·여)씨는 "골목에 있는 음식점의 경우 손님들이 네온사인을 보 고 찾아오기 때문에 네온사인을 포기할 수 없다"며 "네온사인에 냉방에 금연까지 어떻게 장사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같은 날 오후 명동과 여의도에도 네온사인 조명을 켜둔 업소가 태반이었고, 문을 열고 영업하는 곳도 즐비했다. 무더운 날씨 탓인지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한 쇼핑객들은 평소보다 적었지만 점포마다 실내조명과 에어컨 가동을 줄이려는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업소마다 시원한 냉기가 가득했고, 한 의류매장은 벽면에 걸린 옷가지가 흩날릴 정도였다.액세서리 매장직원 유은영(27·여)씨는 "방침상 문을 닫고 영업해야 하지만, 그러면 손님들이 몰리지 않고 심지어 영업을 안하는 줄 아는 손님도 있다"며 "주말에는 단속을 하지 않아 문을 열어 놓는다"고 웃음을 지었다.

네온사인을 환하게 밝혀놓은 화장품 매장이 눈에 띄어 들어가봤다. 밖에는 저녁이 되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었지만 화장품 매장은 수많은 전구들이 열을 뿜어내 실내온도가 30도를 훌쩍 넘었다. 얼마 전 개업한 대리점인데 조명 디자인을 할 때 에너지 문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아 과잉 냉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무 잘못 없는 직원들은 더워서 고생이고, 업주도 전기요금 폭탄을 맞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이 외에도 유흥가 주변 호프집과 음식점 벽면에는 금연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한 고깃집 주인에게 '이 업소는 금연 아니냐'고 묻자 "금연이라고 말하고 재떨이도 주지 않지만 술에 취한 손님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까지 말리기는 힘들다"고 답답함을 내비쳤다.

바로 옆 호프집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에게 재떨이 대신 종이컵을 주고 있었다. 재떨이를 주면 흡연을 방조한 셈이나 종이컵을 주면 단속이 되더라도 주인은 책임을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호프집(45평 이상)은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이른 초저녁부터 거나하게 취한 학생과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연거푸 담배를 피워댔다. 호프집 점주인 이경주(38·남)씨는 "재떨이까지 주면서 담배를 피우게 할 수 없어 대신 종이컵을 내놓고 있다"며 "이제는 담배로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지쳤다. 요즘 손님들 중에는 과태료를 물더라도 담배를 피우겠다 고 하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비흡연자인 이민나(26·여)씨는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데 옆 자리에 앉은 손님이 담배를 피우면 밥맛이 사라진다"며 "배려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많이 난다"고 불쾌해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일정 면적 이상의 음식점에서 흡연이 전면 금지된 지 반년이 됐지만 일부 업주나 국민들이 금연 시행 자체를 무시하면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네온사인과 냉방 등 절전 대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전력 소비 행태는 달라진 게 별로 없다"며 "정부가 실효성 논란에 유명무실해지는 각종 규제를 전면 재검토하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광호 기자 k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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