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누가 가장 보고 싶었는지는 한번 아파보면 된다. 사람이 아프면 무의식의 저 깊은 곳에 숨어있던 보고 싶은 이가 가장 먼저 절실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존재가 바로 그런 이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늙어 죽어갈 때도 어린아이처럼 엄마, 하고 부르게 된다고 한다. 늙은 사람이 엄마, 하고 부르면 너무나 신기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누구나 자기 속엔 늙어도 철들지 않는 아기들이 하나씩 들어있기 마련이다.
하림 역시 누워서 꽁꽁 앓는 중에 먼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 엄마는 아버지보다 더 깊고 슬픈 운명적 존재인지 모른다.
어린시절 시장에서 돌아오는 엄마의 치마폭에 온몸으로 달려가 폭 안기면 엄마의 치마폭에서는 온갖 냄새가 났다. 그 온갖 냄새가 엄마의 냄새였다. 그것은 세상의 냄새였고, 피흘리며 싸워서 먹이를 물고와 새끼들에게 토해주는 어미새의 냄새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누이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하림은 어머니에게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은 늘 못난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혜경이었다.어쩌면 어머니에게 미안하지만, 혜경이가 더 절실하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노란 은행 잎이 하염없이 떨어지던 날, 낡은 교사 뒤로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걸어오던 모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동창회 날이었다. 다시 혜경이를 만나다니, 꿈같았다.
“하림이.....?”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낮고 투명한 목소리였다.
“응? 너 혜경이, 문혜경이 맞지?”
하림은 세차게 뛰는 가슴을 누르고 대답했다.
“응. 오래간만이야. 언제 왔어?”
혜경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응. 조금 전에.... 넌?”
하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나두. 오래간만에 온 학교라 한바퀴 둘러보고 있던 참이었어. 나 같은 사람이 있어 누군가 했지. 같이 걸을까?”
“응.”
혜경은 하림의 왼편 비스듬히 반걸음 쯤 뒤에서 따라왔다.
“그동안 잘 지냈어? 태수 선배도 잘 있고.....?”
하림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 사람 죽었어.”
혜경이 묵묵히 발치를 내려다보고 걸으며 말했다.
“그래?”준호에게 들어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하림은 발걸음을 멈추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새삼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 미안해. 그럴 줄도 모르고......”
“괜찮아. 다아 끝난 일인데,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말 속에 쓸쓸한 회한 같은 게 비쳤다. 재작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게 콧등이 찡해져왔다.
‘혜경아, 사랑해.’
하림은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어둠 속에서 가만히 독백처럼 되뇌었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이 안개라도 낀 것처럼 침침하게 흐려졌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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