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왼쪽)과 차범근[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1987년 11월 19일부터 22일(이상 현지시간)까지 서독 에센에선 남녀부가 통합된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창설 대회를 1956년 도쿄에서 개최한 남자부는 1985년 서울 대회까지 13차례 대회를 치렀다. 1980년 뉴욕에서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여자부는 1986년 마스트리히트(네덜란드) 대회까지 4차례 대회를 남자부와 격년으로 소화했다.
첫 통합 대회에서 한국은 남녀 8체급에 모두 출전해 남자 60kg급의 김재엽이 금메달, 95kg급의 하형주와 78kg급의 이쾌화가 동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막 걸음마를 뗀 여자부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뒷날 66kg급에서 세계선수권(1993년 캐나다 해밀턴 대회, 1995년 일본 지바 대회)과 올림픽(1996년 애틀랜타 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게 되는 서울체육중학교 2학년 조민선이 48kg급에서 16명이 겨루는 3회전에 오른 게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대회는 서울 올림픽을 10개월여 앞두고 열려 유도 기자 대부분이 원정 취재에 나설 만큼 비중이 높았다. 그 무렵 글쓴이의 주 종목은 야구였다. 유도는 부종목이었다. 23일 새벽(한국시간) 앙숙 호소가와 신지를 허벅다리걸기 한판으로 메다꽂고 금메달을 차지한 김재엽의 기사를 마감 시간 직전에 국제전화로 부르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런데 글쓴이는 대회 기간 유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축구 기사를 송고하게 됐다. 대회가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보니 에센에서 보낸 축구 기사가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그 무렵 ‘차붐’ 차범근은 서독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었다. 대회의 비중을 알고 있었는지 차범근은 아내 오은미 씨와 함께 자동차로 그 유명한 아우토반을 달려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러 왔다. 축구 담당 기자는 아니었지만 차범근과는 구면이었다.
손흥민[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한국 선수단이 묵고 있던 호텔 라운지에서 차범근과 인터뷰했다. 기사의 전체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데스리가에서 10시즌 100골을 채우고 싶다”는 게 골자였다. 25세 때인 1978-79시즌 다름슈타트에서 분데스리가 활동을 시작한 차범근은 당시 이미 34세였다. 공군에서 군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연장 복무를 해야 하는 황당한 일을 겪는 등 그 시절엔 외국 진출이 결코 쉽지 않았다.
아무튼 차범근은 요즘 시각으로 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합류 여부를 놓고 찬반양론이 일었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뛰었고 분데스리가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차범근은 2년 뒤인 1989년 308경기 출전 98골(모두 필드 골)의 빛나는 기록을 훈장으로 달고 고국에 돌아왔다. 눈에 띄는 기록은 하나 더 있었다. 상대 수비수들의 악의적인 반칙으로 여러 차례 부상을 당했지만 자신은 딱 한 장의 경고 카드만 받았다.
신세대 팬들에게 레버쿠젠은 이제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클럽이 아닌 손흥민이 뛰는 팀이 됐다. 소문이 무성하더니 레버쿠젠은 지난 13일 손흥민과 2018년 6월까지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레버쿠젠이 2012-13시즌에서 바이에른 뮌헨, 도르트문트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2013-14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단 점이다. 유럽 클럽 대항전은 월드컵과 함께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뛰어 보고 싶은 무대. 손흥민은 이적과 함께 곧바로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활약하게 됐다.
클럽 선배인 차범근은 1980년 프랑크푸르트와 1988년 레버쿠젠에서 각각 UEFA컵(UEFA 유로파리그 전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 대회 두 차례 우승으로 차범근은 유럽 무대에 더욱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2009년 11월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17살 이하 월드컵에서 손흥민은 한국이 치른 5경기에서 3골을 넣었다. 3-1로 이긴 조별 리그 F조 우루과이 전에선 결승 골, 2-0으로 완승한 알제리전에선 추가 골을 터뜨렸다. 1-3으로 져 4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대회 준우승국 나이지리아와 벌인 8강전에선 0-1로 뒤진 전반 40분께 25m 중거리 슛으로 동점 골을 넣었다. 이 골은 대회에서 나온 인상적인 골 5위에 올랐다. 불과 4년 전 일이다. 그 사이 손흥민은 유럽 축구계가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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