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부총리까지 나서 '엔亂' 장기화 예고했는데...
5년전 엔화값 하락때 광풍 불어 개업醫들 목숨끊은 그곳
'패가망신' 학습효과에 전문가들도 "환리스크 부담 커 시기상조"
MMF 단기상품에만 조심스럽게 투자.. 베팅시기 놓고 저울질만[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장준우 기자] "엔저는 절대로 그냥 지나가는 현상이 아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이 나올 만큼 엔저에 대한 경계심이 높다. 수출 기업의 아우성과 엔 캐리 트레이드(저금리 엔화 자금으로 고금리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의 부활을 점치는 목소리도 요란하다. 한국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는 엔저는 그렇다면 실물 투자시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5년 전 엔화를 대출의 광풍(狂風)이 불었던 청담동의 분위기를 20일 샅샅이 훑어봤다.
엔저의 파상공세에도 청담동 부자들은 아직 뚜렷한 움직임이 없는 관망 상태다. 엔화 환율이 더 내려갈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5년 전 엔저 파동의 학습효과가 투자 심리를 제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청담동에선 여러 명의 개업의사가 목숨을 끊었다. 엔저 시점에 제로금리의 이점으로 엔화 대출을 받아 병원을 열었다가 이후 치솟는 엔화 환율을 감당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엔화 대출은 큰 사회문제가 된 바 있다.
청담동 프라이빗 뱅킹 센터를 찾은 현금부자들은 엔저의 분위기만 살피고 있었다. 함형길 하나은행 청담동 PB센터장은 "청담동 부자들도 금리가 떨어지고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하니 걱정들이 많다"면서 "저금리 탓에 은행 수신고가 줄었고, 머니마켓펀드(MMF) 같은 단기 상품에 돈이 몰리고 있다"고 했다. 투자 트렌드에는 변화가 뚜렷하다. 채권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투자자가 늘었다. 위탁 금액도 줄어 5억원 이상을 맡겨야 하는 골드클럽 자산관리 대상에 1억원, 2억원 등 상대적으로 소액(?)을 맡기는 손님들도 생겼다.
함 센터장은 엔화 투자를 시기상조라고 봤다. 그는 "과거 이 일대에서 엔화 대출을 받아 확장했다가 크게 손해 본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아직 엔화를 빌려 병원을 개업하거나 투자하려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엔화 환율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신규 수요는 살아있다"면서 "눈치를 보고 대기하는 분위기는 감지된다"고 덧붙였다.
신한은행 개인자산관리(PWM) 압구정중앙센터의 조성만 팀장도 풀죽은 투자 분위기를 증언했다. 그는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 고민"이라면서 "토빈세(외환거래에 붙는 세금)를 물어야 하고, 환리스크도 있지만 그나마 브라질 채권 투자 등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다.
엔저가 엔 캐리 트레이드를 되살릴 가능성을 묻자 회의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조 팀장은 "예전에 엔화 대출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아 학습효과가 있는데다 시중 금리가 워낙 떨어져 엔화 대출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8년과 2009년 엔화 대출이 성행했던 건 원화 대출의 금리가 연 6~7%일 때 엔화 대출 금리가 3.5% 정도로 절반가까이 낮았기 때문"이라면서 "지금은 기업 운영자금의 경우 원화 대출 금리도 연 3.8% 수준에 머물러 굳이 엔화를 찾으려는 수요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시중 은행의 엔화 대출 잔액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신한은행의 엔화 대출은 1월 말 1220억엔에서 4월 말 1177억엔으로 감소했다. 이 기간 우리은행의 엔화 대출 규모 역시 1196억엔에서 1110억엔으로 줄었다. 금융권에선 "엔고 당시 대출을 받았던 개인이나 기업들이 도리어 엔저 대출을 받아 상환에 나선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섣불리 투자에 나서지 말라는 충고도 있었다. 5년 전 엔저 사태 당시 구성된 엔화대출자모임의 김선웅 대표는 "담보만 제공하면 누구나 엔화 대출을 받을 수 있어 병원이나 개인사업자들이 엔화를 빌려 쓰면서 목숨을 끊는 상황까지 벌어졌다"면서 "환율의 움직임은 누구도 알 수 없어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장준우 기자 so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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