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다보면 사람 사이에만 정이 생기는 게 아니다. 손때 묻은 물건에도 정이 들게 마련이고, 살던 집 기둥에도 정이 붙게 마련이다. 그러니 하물며 기르던 짐승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함께 살던 애완견이 죽자 성대하게 무덤을 만들어 장례를 지내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고, 심지어는 상실의 아픔에 못 이긴 나머지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해외 뉴스가 뜨기도 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니 윤여사 고모할머니가 팔년 동안 밥 주고 길렀다던 누렁이 자매와 얼마나 정이 깊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
더구나 가족 없이 혼자 살던 할머니로서는 어린 강아지 때부터 함께 살았던 누렁이 자매가 식구나 다름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정든 놈들이 아닌 대낮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딴 게 아니라 엽총에 맞아 죽었다니 그 놀라움과 충격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렇게 한동안 하림을 향해 가을 장마에 봇물 터지듯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던 고모할머니는 이윽고 한숨을 한번 크게 몰아쉰 다음,
“못된 건 영감 뿐만이 아니라우. 그 딸년은 더 해. 얼굴은 매꼬롬하게 생겼어도 여시야, 여시! 아주 백여시란게.”
하고 느닷없이 영감의 딸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딸이요....?”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반문을 하며 고모할머니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 저수지 방죽에서 마주쳤던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여시’라는 표현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긴 이런 시골에선 보기드문 분위기의 여자라는 사실만은 분명했고, 그런 미인을 가리켜 옛날부터 ‘여우같다.’ 고 표현해왔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무언지 모를 도도한 지성과 분위기를 풍기던 그녀의 모습과 그런 천한 표현과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윤여사 고모 할머니는 그녀를 가리켜 대뜸 ‘여시’도 모자라 ‘백여시’라 했다.
“암. 여시잖고! 고년이 정신이 좀 나간 지 애비를 끌고 이 마을로 들어왔어. 그리군 계곡 올라가는 입구에다 이층집을 지어 살면서 이 동네를 지들 것처럼 휩쓸구 다니지 뭔가. 운학이 놈도 미쳤지. 이장이람서 고런 년 하나 몰아내지 못하고 외려 고년을 싸고 돈다니까? 얼굴이 반반하니께, 지 주제도 모르면서 헬렐레 하고 정신이 쑥 빠져서 고년 꼬리만 쫓아다니는 거지 뭐. 고게 지 애비 끌고 와서 그래, 기도원인가 뭔가를 짓는다는구먼. 그까짓 기도원 들어오면 동네 망해. 동네 망한다구.”딸 이야기가 나오자, 그렇잖아도 날카로웠던 윤여사 고모할머니의 입이 더욱 험해졌다.
그랬군.
그녀의 말을 들으며 하림은 속으로 짐작했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퍼즐 조작들을 바쁘게 맞추어보고 있었다. 알듯말듯한 그림이 그려졌다가 지워졌다가 했다. 사실 아직 저수지에서 만난 여자가 영감의 딸이란 증거는 없었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었고, 자기가 직접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짐작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하림은 왠지 그녀가 그녀일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자존심이 셀 것 같은 분위기. 중년의 이런 시골에서는 좀체 보기 힘들 미모....
그런데 거기에 그녀랑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절름발이 이장 운학의 이름이 나오자,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불쾌한 느낌 비슷한 것이 들었다. 사실 자신에게 그럴 이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질투를 할 사항도 없었고, 불쾌감을 느낄 사연도 없었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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