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 설정비 반환소송 원고 승소는 단 2건 뿐

소비자가 甲으로..금융패러다임 大전환④

-금융권 상대 소비자 권리구제 신호탄 되나

근저당 설정비 반환소송 원고 승소는 단 2건 뿐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2009년 9월 신한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로 1억원을 빌린 장모 씨는 근저당권 설정비로 94만원을 부담했다. 하지만 인지세 등 근저당권 설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은행이 부담하게 돼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반환 소송을 냈다. 법원은 올해 2월 1심 판결에서 "신한은행은 75만1750원을 돌려주라"며 장씨의 손을 들어줬다. 장씨의 사례는 그간 은행 대신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떠안았던 소비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하지만 금융권을 상대로 한 소비자들의 권리구제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근저당이란, 금융기관이 대출을 해주면서 채무자의 집이나 땅을 담보로 잡고 그 권리를 등기부 등본에 기재하는 작업이다. 근저당권 설정비는 이런 작업에 들어가는 인지세 등 행정수수료를 말한다. 한 마디로 은행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쓰이는 돈이다.

지난 2011년, 대법원은 이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은행 약관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은행을 위해 쓰는 돈을 반드시 소비자가 내도록 규정한 약관은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해 무효라는 취지였다. 금융소비자연맹은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최근 10년 간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며 근저당권 설정비용을 부담한 소비자가 약 2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금융권을 발칵 뒤집어놨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근저당권 설정비용 반환 관련 문의 내역을 보면, 상담 건수만 5만5000여건에 이른다. 단일 주제로는 가장 많이 접수된 민원이었다. 두 번째로 상담이 잦았던 스마트폰 관련 문의 건수(2만5000여건)와 비교해도 두 배를 웃돈다.

이렇게 소비자들의 관심은 높지만 권리구제는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장씨의 사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 사이 나온 29건(신용협동조합 포함)의 관련 소송 중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내 소비자가 이긴 유일한 사례다.

앞서 신용협동조합과의 소송에서 소비자가 이긴 사례는 한 건 있었지만, 은행을 상대로 재판해 승소한 건 장씨가 유일하다. 기업ㆍ부산은행 등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비롯해 씨티ㆍ스탠다드차타드 등 외국계 은행에 이르기까지 관련 소송에선 대개 은행들이 승소했다. 4월 현재 은행들의 전적은 28전 27승 1패. 은행의 압도적인 승리다. 앞서 장씨에게 패소한 신한은행도 항소해 상급심이 진행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이 엇갈리는 이유는 사안별로 소비자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은행 약관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났지만 대출 건건 별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200억원 규모의 근저당권 설정비용 반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태산의 이양구 변호사는 "아직까지 이 사안에 대한 재판부와 원고의 이해가 높지 않아 1심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상위법이 은행 부담을 명시하고 있는 만큼 상급심으로 가면 소비자들이 불리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근저당권 설정비용 문제를 상법상 상행위로 다루면 소멸시효는 5년에 그친다. 이 경우 소비자가 승소하더라도 대출 받은 뒤 5년 이내인 사람만 구제 대상이 된다. 반면 민사상 부당이득 반환 사례로 분류되면 최근 10년 이내에 대출받은 소비자가 모두 부당하게 떠안은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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