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를 맞아 서울 종로구 한 문방구에서 가게 앞에 좌판을 펼쳐 두고 할인행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관심을 갖는 이가 거의 없을 뿐더러 칫솔이나 이쑤시개 같은 비문구류도 더러 눈에 띈다.
학생들 방문 뜸해지면서 문 닫는 문구점 속출
불량식품 단속으로 과자 판매까지 '위태'[아시아경제 이정민 기자, 김인원 기자]"학교에서 준비물을 다 주는 바람에 학생들이 오질 않아. 이제 과자도 못 팔게 한다니까? 정말 장사 접으란 소리지."
지난달 학습준비물 지원액을 확대키로 한 정부가 최근 불량식품 근절 대책까지 내놓으면서 영세문구점들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5일 서울시 종로구 창신초등학교 앞 A 문구점. 새학기를 맞아 한창 바빠야 할 시간에 문구점주는 연신 TV리모컨만 만지고 있었다. 그는 "개학날 하루 반짝 바빴지 공 치는 날이 대부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학교 앞에서 30년째 문구점을 운영했다는 김모씨는 "새 학기가 시작돼도 장사가 안 되긴 마찬가지"라며 "학교에서 나눠주지 않는 알림장이나 수첩 종류만 드문드문 팔리는 수준"이라고 한 숨 쉬었다.
문을 닫은 문구점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인근 문구점 한 곳은 '임대문의'라고 적힌 흰 종이를 붙여 놓은 상태였다. A 문구점 사장은 "근처 문구점들은 대부분 가게를 내놓은 상태"라며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앞으로 5년 안에 문구점들이 전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구의 한 문구점. 문앞에 '임대문의'라는 알림말을 붙여놓았다.
서울 중구 남산초등학교 앞에는 영세 문구점이 아예 발자취를 감췄다. 유명 대형문구점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구점 안에는 사무용품이 주로 진열돼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쓸만한 물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곳 직원은 "학생들은 잘 안 온다"며 "주 고객이 인근 사무실 직원들이다 보니 초등학생용 공책은 들여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0년 서울시의 학습준비물 지원 정책으로 설 자리를 잃은 문구점들이 하나 둘 가게를 접고 있는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불량식품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식품 판매도 사실상 어렵게 됐다. 올 하반기부터는 우수문구점으로 지정된 곳만 식품 판매가 가능해진다.
한 문구점주는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불량식품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좋지만 학습준비물 지원에다 식품 판매까지 막으면 사실상 우리보고 더 빨리 문 닫으라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존 정책과 중복된다는 말도 나왔다. 또다른 문구점주는 "학교 앞이 식품안전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한 달에 한두번 정기적으로 단속을 나와 유통기한이나 위생환경을 검사한다"며 "또 무슨 우수문구점을 지정하자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문구점주들은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이로 인해 폐업에 이른 문구점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것.
한 문구점 사장은 "학교에서 지급하는 학습준비물을 지급할 업체는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된다"며 "자본이 부족한 영세 문구점은 입찰에 참여하는 것 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소규모 입찰은 학교 인근 문구점에 우선권을 줘야한다는 의견이다.
인근 문구점주는 "문구류보다 생활용품 판매가 더 많은 우리는 이제 문구점이 아니라 노점이나 다름없다"며 "아이들 웃음소리가 이젠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ljm1011@
김인원 기자 ly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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