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號 출범.. 산은의 앞날은?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산은금융그룹 본사는 밤 10시까지 대부분의 사무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간부들과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새 회장으로 오게 될 홍기택 내정자에 대한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회장 내정자 인사가 발표된 이후의 은행 분위기는 '불이 꺼지지 않는' 사무실이 웅변하고 있었다. 기대와 우려, 그리고 '불확실'이다.

이에 앞서 금융위원회는 산은금융지주 신임 회장에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내정됐다고 발표했다. 산은지주 회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관료 출신이 후임으로 올 것이라 전망했던 시장과 산은지주 관계자들을 당황케 한 인사였다. 산은지주의 주요 간부들도 발표가 나기 30분 전쯤에야 인사 내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산은 지분의 100%는 산은지주가 갖고 있다. 또 산은지주에 대해선 한국정책금융공사가 90.26%, 기획재정부가 9.7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산은지주회장 인사를 정부가 결정하는 법적 토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산은은 민간부문으로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다. 퇴임한 강만수 회장이 민영화의 수단으로 기업공개를 추진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정책금융의 기능이 강조되면서, 산은 내부적으로는 민영화 시계가 멈춘 상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정책금융의 포괄적인 재편을 주도할 관료출신 수장이 올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인사는 의외였다.

홍 내정자는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1975년부터 이듬해까지 한국은행에서 잠깐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1984년부터 30여년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금융업무 경험은 동양증권 사외이사 2년, 한국예탈결제원 비상임이사 2년, 한국투자공사(KIC) 운영위원 3년, NH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 1년 등이 전부다. 정부와의 스킨십은 2010~2012년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인수위원 활동 정도다. 인수위 시절 홍 내정자는 튀는 언행으로 화제를 모았다. 인수위가 출범한 지 얼마 안돼 기자들이 인수위원 얼굴을 모를 때, 귤 한봉지를 들고 나타나 기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다가 기자들이 "누구냐"고 묻자 "비밀"이라고 답했다. 이어 "홍기택 교수 아니냐"고 묻자 "홍기택이 누구야"라고 되물었다. 맑은 날 우산을 쓰고 나타나 인수위 건물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피한 일화도 있다.

교수 출신인 홍 내정자를 신임 회장으로 선임한 정부가 산은을 중심으로 정책금융의 큰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국제금융, 거시경제 분야의 민간출신 전문가가 내정된 만큼 적어도 정책금융기관으로의 급진적인 선회는 없지 않겠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산은은 국내와 국제금융 자본시장에서 오랜 시간 경쟁력을 갖춰온 기관"이라면서 "(홍 내정자가)국제금융과 거시경제 전문가라고 불리는 만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던 기관의 발을 순식간에 '정책금융'으로 묶어버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산은은 파생상품이나 국제금융 부문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대외적으로 이를 인정받고 있다.

인사가 발표된 이후 홍 내정자의 휴대전화는 꺼져 있었다. 밤 늦게 "전화 못받아서 미안하다. 취임 후 연락하겠다. 지금 업무 파악중"이라는 짧은 문자메시지로만 답했다.

한편, 산은금융지주의 신임 회장 선임을 신호탄으로 금융권 인사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신제윤 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민영화 의지와 철학을 같이 할 수 있는 분이 맡아야 한다"고 말해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우회적인 퇴진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아울러 "사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 원장이 고맙다"면서 "(용퇴와 관련해) 편할 때 얘기하라고 해 줘서 부담을 많이 덜었다"고 언급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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