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근철 기자]올해 초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나온 논문을 훑어보다가 재미있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Where the enemy advances, we treat. Where the enemy retreat, we pursue." 어딘가 눈에 익은 표현이다. 그렇다. 마오쩌둥(毛澤東)의 16자전법의 일부분이다. 보잘것 없던 홍군을 이끌고 거대한 국민당 정부 군대에 맞서 싸우기 위해 마오쩌둥이 창안했던 전투교본이다. 우리식으로 풀어쓰면 '적이 진군하면 물러나고 (敵進我退), 적이 머물면 교란하고 (敵止我憂), 적이 피곤하면 공격하고 (敵避我擊), 적이 달아나면 쫓는다 (敵退我進).'쯤 되겠다.
그런데 16자 전법이 왜 새삼 다시 주목받고 있을까. 논문은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정책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어떻게 대처할 지를 다루고 있었다. 윤순이란 중국계 전문가가 기고한 글이다. 미국이 견제의 고삐를 바짝 쥐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선택은 '서진(西進)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란 줄거리였다. 이는 단순히 저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서진 정책은 이미 중국 외교 정책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왕지시(王緯思) 북경대 국제관계대학장이 다듬어놓은 정책이다. 미국에 당장 힘으로 맞서 정면충돌하기 보다는 서쪽에 눈을 돌려야할 때라는 논리다. 서쪽 지역은 지역적으로, 정치적으로 미국의 취약지역을 의미한다. 중국이 급성장했으나 아직 미국과 정면승부를 펼칠 때는 아니다. 그러니 당분간 상대의 취약점을 파고들며 힘을 분산시킨 뒤 미국을 포위해 간다는 발상으로 읽힌다. 이같은 발상의 기저에는 과거 국민당의 군대를 서서히 고립시키며 침몰시켰던 마오의 16자 전법이 자리를 잡고 있다.중국의 새로운 지도자 시진핑 (習近平) 주석이 최근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을 마쳤다. 앞으로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자의 첫 순방일정이 갖는 상징성은 크다. 보도됐듯이 그의 순방루트는 '러시아-아프리카(탄자니아-콩고-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어졌다. 말그대로 '서진'이다. 방문국들은 한결같이 미국이 껄그럽게 여기거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국가들이다.
과거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거액을 투자하며 결속을 강화했다. 물론 전략적인 목표는 미국 견제에 있다.
아프리카도 미국에 앞서 중국이 일찌감치 공을 들여온 곳이다. 최근 아프리카 투자를 둘러싼 잡음도 나오고 있지만, 시 주석은 가는 곳마다 "힘 닿는데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미국은 당황한 기색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8일 세네갈,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4개국 정상을 백악관으로 초청, 정상회담을 가졌다. '시진핑 루트'를 의식해 급조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미국 언론의 평가도 대체로 그랬다.시진핑 시대를 맞아 중국은 명실상부한 월드파워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굳혀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중국은 이제 지구촌 전체를 바둑판 삼아 불꽃튀는 지략 싸움을 펼쳐나갈 전망이다. 미소를 머금고 외곽에 놓는 한수, 한수가 상대방의 급소를 겨냥한 포석들이다.
한반도는 그 치열한 반상대결의 승부처 중 하나다. 그런만큼 이 대국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지켜봐야한다. 필요하면 선제적 대응도 치밀하게 마련해야한다. 큰 세력싸움 과정에서 사석(捨石)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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