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北美, 한 테이블에 앉아 브리핑 듣겠다고 했다"

'탈 원전' 선언한 독일…9년내 원전 모두 폐쇄
탈 원전 비용 부담한다는 여론 강해..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 구조 전환 시동
신재생에너지 저장 기술 없고 정부 계획 미비는 약점


독일 펠트하임 신재생에너지 마을의 지그프리트 카이퍼씨가 풍력발전기를 가리키며 발전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일 펠트하임 신재생에너지 마을의 지그프리트 카이퍼씨가 풍력발전기를 가리키며 발전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를린·트로이엔브리첸(독일)=아시아경제 김종일 기자] 북한과 미국이 독일에서 만났다. 뉴스다. 지구상에서 가장 불편한 관계를 지닌 양국이 과거 냉전의 최전방이었던 독일에서 만났다면 분명히 '큰 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 브란덴부르크주(州)에 위치한 펠트하임에서 양국이 만났다.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이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혹은 한 측이 자리를 뜬다. 그런데 시끌벅적한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양국은 조용히 한 테이블에 앉아 묵묵히 독일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리를 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견원지간인 양국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게 한 '큰 건'은 바로 '신재생에너지'였다. 펠트하임은 신재생에너지의 '메카'로 불리는 곳이다. 미국은 '탈 원전'의 해법을 도모하기 위해 북한은 다양한 전력생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각자 이곳을 찾은 것이다.

독일은 '탈 원전'의 선두국가다. 2011년 6월 원전 발전을 포기했다. 같은 해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2022년까지 독일 내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펠트하임은 그 상징이다. 지난 10~11일(현지시간) 독일을 방문해 펠트하임과 전력회사 등을 찾아 '탈 원전'을 선언한 독일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탈 원전으로 인한 부담, 감당한다" = 탈 원전을 선언하게 되면 당연히 원전을 대체할 다른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다른 에너지원을 찾고 개발하는 데는 적잖은 비용이 소모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당장 독일정부는 전기요금을 올렸다. 그럼에도 독일인들은 탈 원전을 대세로 받아들이며 이로 인한 부담을 지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독일 4대 전력회사로 남동부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EnBW의 마티아스 리벨 대외업무 담당관은 "2011년 원전 폐쇄 결정으로 인해 9억 유로 손실을 봤다"면서도 "지금은 에너지 전환시대로 핵에너지에서 신재생에너지로 가는 과도기라 이 비용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한다"고 밝혔다.

베를린 주변에 사는 가정주부 케르스틴 초페(51)씨도 "올해 3월 전기요금이 킬로와트당 3.6% 올라 월 5유로를 더 부담해야 한다"면서도 "이 정도 비용은 감당할 수 있으며 적정한 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핵에너지가 가장 저렴한 것은 사실이지만 늘 위험에 노출된다는 문제가 있다"며 "독일국민들은 전반적으로 원전폐쇄에 대한 찬성한다"고 독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전했다.

독일 4대 전력회사인 EnBW의 마티아스 리벨 대외업무 담당관이 원전 폐지로 인한 회사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일 4대 전력회사인 EnBW의 마티아스 리벨 대외업무 담당관이 원전 폐지로 인한 회사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펠트하임 성공 뒤에는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 = 45가구, 145명이 사는 펠트하임에는 연간 3000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신재생에너지 도입 필요성에 대한 이곳 주민들의 앞선 인식과 잡음 없이 사업을 추진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함이다.

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지그프리트 카퍼트씨는 "위에서부터 정책이 내려오는게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사업 설명의 성공의 이유로 주민들의 자발성을 꼽았다.

펠트하임 신재생에너지 단지는 놀랍게도 보상비나 시위 등이 없이 만들어졌다. 크벨레라는 회사가 이 지역을 풍력발전을 위한 부지로 꼽고 주민들에게 부지를 임대해 달라고 요청하자 지역주민들은 의견을 한데 모아 결정했다. 주민들은 인근지역에 비해 40% 정도 전기요금을 싸게 공급받고 크벨레로부터 임대비를 받는 것 외에 별다른 보상비를 받지 않았다. 자발적인 결정이었고 다른 어떤 세력도 개입하지 않았다.

이후 펠트하임은 바이오가스, 태양광 설비까지 갖춘 종합 신재생 단지로 거듭났다. 또 펠트하임을 모델로 삼아 독일 전역에 비슷한 단지를 잇따라 조성했다.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짓는다고 해도 시위 플랑카드부터 붙는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다.

◆ 신재생에너지 전력 저장 기술은 아직 부족 = 독일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아직 보완해 나가야 할 점은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전력 저장 기술은 넘어야 할 큰 산으로 지적됐다.

EnBW의 리벨 담당관은 "신재생에너지 기술로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이 부족하다"며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인 만큼 공급량을 예측하기 어려운 점도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펠트하임에서 만난 카퍼트씨도 "풍력 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온전히 저장해 내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잉여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도 역시 태양광 설비는 기후에 따라 전기 생산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펠트하임을 방문한 날도 바람이 적잖이 불었지만 저장 설비가 없어 전력을 충분히 저장하고 있지 못했다. 반면 날씨가 흐려 태양광 설비는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 체 무용지물 신세였다.

정부가 구체적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됐다.

리벨 담당관은 "지금 국가가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는 부담을 국민들이 감당하고 있지만 앞으로 5년, 10년 뒤에는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며 "정부가 상세한 마스터플랜을 서둘러 짜야 어떻게 정책이 나올지 예측해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일 기자 live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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