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2013-정직]치고 빠지는 손, 시장선 무죄 양심은 유죄

작년 불공정거래 234건···갈수록 늘어
피해 본 개미들도 “이 바닥 원래 그래”
정직한 투자 수익은 공자님 말씀


[WITH 2013-정직]치고 빠지는 손, 시장선 무죄 양심은 유죄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1047명이 참여해 ‘유죄’ 의견은 22.6%, ‘무죄’는 77.4%.”지난해 5월 27일 한 주식거래 사이트에서 개설된 설문조사에서 일명 ‘상한가 굳히기’로 거액의 시세차익을 거둔 투자자의 처벌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결과다.

2012년 4월 25일 증권선물위원회는 정치 테마주와 중소형 종목을 중심으로 시세조종을 일삼아 3000만원의 초기 투자자금으로 1년여 만에 400억원대에 이르는 부당이익을 취한 전업투자자 A씨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소위 ‘상한가 굳히기’로 떼돈을 번 A씨는 물량 소화와 가짜 매수주문, 짜고 치는 통정매매, 장 마감후와 다음날 개장 전 대량의 매수주문으로 가격을 유지하거나 매수세가 넘쳐나게 보이는 등 작전 수법이라 불리는 모든 방법을 적절히 활용했다. 이들이 건드린 종목은 52개(21개는 테마종목)나 되고, 시세조종 횟수는 1만2881회다.가장 큰 피해자는 당연히 개미 투자자들이었다. 개미들이 주식거래단말기(HTS)의 빨간 화살표(상한가)에 현혹돼 주머니를 털어 추종 매매를 실시하면 A씨 일행은 곧바로 물량을 팔아 치웠고, 급락한 주가를 개미들은 울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개미들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A씨가 무죄라는 답이 절대적으로 많이 나왔으니,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다.

무죄를 선택했을 것으로 보이는 설문 참여자들은 댓글을 통해 “이 바닥에선 구라 안치고, 사기 안치면 무죄다. 왜냐면 이 바닥 절반이 구라쟁이에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헛매수와 헛매도가 죄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주가조작이 아니라면, 금액이 얼마가 되었든 호가창에 보여지는 단순한 매수와 매도 행위만으로 어떤 처벌을 하는 것은 그 처벌이 잘못이라고 본다”고 성토했다.

또한 금융감독당국에 되물었다. “저런 큰손 없음 주식이 올라가나? 돈 많은 사람이 돈 따는 게 이 세계인데. 그러면 기관 외인도 유죄인가? 비쌀 때 파는 사람이 다 유죄인가?”

◆정문술과 안철수의 주식 매도는?=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9월 14일 미래산업 창업주이자 대주주였던 정문술 고문과 부인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 전량을 장내매도했다. 지난해 초 300원대에 불과했던 미래산업 주가는 안철수 테마주로 묶이며 무려 2000원대까지 치솟았고, 정 고문이 주식을 팔 때 매도단가는 1785원에 달해 이들이 얻은 시세차익만 42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식을 접한 한 투자자가 같은 주식 거래 사이트에 정 고문의 매도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1373명이 참여해 정 고문의 입장에 공감한다는 답변이 54.8%, 비공감 의견이 45.2%였다.

역시 댓글에서는 “주식이란게 올려서 급등해서 파는건데, 대주주가 팔든지 누가 팔든지 알게 뭐예요. 아무나 팔라구 있는게 주식인데, 아무나 살수도 있고···”, “중요한건 자기가 주식 팔고싶어서 팔았다는데 뭐가 문제? 주가가 횡보할 때 팔든, 폭등할 때 팔든 자기 마음이지. 꼭 정치인 테마 붙어서 폭등 했을땐 대주주는 주식 팔지 말란 법 있나?”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대통령 후보 출마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지난해 초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보유하고 있던 안랩 주식 86만주를 두 차례에 걸쳐 장내매도해 매각대금 930억5200만원을 안철수재단에 기부했다. 안랩도 안 전 원장 덕분에 주가가 급등했던 시기였다.

정 고문이나 안 전 원장 모두 지분 매각에는 사연과 이유가 있었다. 정 고문은 회사를 세울 때부터 자식이나 특정주주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임직원의 회사가 되도록 하기 위한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다. 안 전 원장은 안철수재단을 설립해 일자리 문제와 소외계층 교육, 세대간 소통을 중점 추진하기 위해 자신의 안랩 지분을 매각해 재단에 기부하기 위해 매도를 한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미래산업이나 안랩의 주가 상승에 관여한 바가 없고, 최대주주지만 시세차익 실현 차원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시장에서 주식을 내다 팔았다는 점에서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게 금융감독당국의 판단이다.

다만,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옛 속담처럼 왜 하필 해당 종목 주가가 급등했을 때 매도가 이뤄졌느냐는 의문은 지금도 가시지 않고 있다.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으나 양심에서 비롯된 도덕적 책임을 이들 두 사람이 옳게 실천했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주식 바닥에서 다양한 사례로 목격된다. 하지만 모든 행동이 ‘수익의 극대화’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 되고 있다.

◆‘수익’ 위한 행위는 정당하다?=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는 데 있어 최소한으로 강제할 수 있는 제도 장치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일일이 짜 맞춰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나 주식시장 시스템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한 투자기법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는 사태에 대응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발표한 ‘2012년 불공정거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금감원이 자본시장 불공정거래를 조사한 건수는 모두 243건으로 전년 209건보다 34건(16.2%) 증가했다. 조사결과를 검찰에 고발·통보 조치한 사건은 모두 180건으로 전체의 74.1%를 차지했다. 금융감독당국이 규제를 강화했고, 언론이 불공정거래에 대한 부당성을 적극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전혀 없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400억원 슈퍼개미에 대한 투자자들의 추종 심리는 결국 ‘수익’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모든 게 용서가 된다는, 일반적인 생활과 다르게 적용되는 도덕적 기준이 그들의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슈퍼 개미들은 과거와 달리 대형 로펌 변호사를 대동하고 검사에 임하는 등 금융감독당국의 제재에 철저히 대응하고 있다. 치열한 법적 공방 속에 ‘도덕’과 ‘정직’이라는 단어는 들어설 틈이 없다. 불공정 여부를 가리는 데 드는 국민의 세금 부담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방법은 없을까? 일부 학계와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으로 인해 비합리적인 투자자들이 과연 합리적인 투자자로, 금융투자업체의 상품 판매자들이 합리적인 판매자로 바뀔 것일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반론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입은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다름 아닌, 평소 주식에 대해 일반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했던 사람들이거나, 재무관리 또는 경제학을 전공한 전문가였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들은 이미 고차원의 교육을 받은, 소위 말하는 백그라운드가 화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며 “이들이 벌이는 ‘남들과 다른 행동’이 개미 투자자들에게는 희망과 환상으로 비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직한 주식 투자는 남의 이야기 수준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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