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김영남의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 중에서

만약 어느 여자에게 이처럼/아름다운 숲속 길이 있다면/난 그녀와 살림을, 다시 차리겠네.//(......)난 그녀를 끝까지 지키는 장사송(長沙松)으로 눈을 얹고/진흥굴 앞에서 한겨울을 품위 있게 나겠네./설혹 그녀에게 가파른 절벽이 나타난다 할지라도/나는 그 위에 저렇게 귀여운 암자를/옥동자처럼 낳고 살 것이네.

■ 하늘이 처음 남자와 여자에게 뒷날을 위해 아이를 만들라고 명령했을 때, 둘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걸 왜 우리가 해야 하는지요?" 그래서 하늘은 인간에게 두 가지 사랑을 심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이성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자식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 생기자 남녀는 몰래 숨어서 마음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아이가 생기자 마치 자기자신처럼 아꼈습니다. 첫번째 준 사랑은 '나누는' 사랑이고 두 번째 준 사랑은 '그냥 주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이야, 그저 예쁘게 굽이치는 길일 뿐이지만, 시인이 저토록 달콤한 은유의 방향제를 뿌리는 바람에, 자연이 한껏 섹시해졌습니다. 산길 한번 걷는 일이, 삼라만상을 소품 삼아 알콩달콩 소꿉놀이 연애라도 벌일 듯 사랑스러워집니다. 시인 또한 세상 온갖 것에 사랑을 심는 이가 아닐지요.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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