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에 앉아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본다/마당 한쪽 햇살이 뒤척이는 곳/저것 내가 무심히 버린 놋숟가락 몸이 부러진....../화순 산골 홀로 밭을 매다 다음날 기척도 없이 세상을 떠난/어느 할머니,/마루 위엔 고추며 채소 산나물을 팔아 마련한/돈 백만원이 든 통장과/도장이 검정 고무줄에 묶여 매달려 있었다지/마을 사람들이 그 돈으로 관을 마련하고/뒷일을 다 마쳤을때 그만 넣어왔다(......)
박남준의 '다만 흘러가는 것을 듣는다' 중에서■ 숨어사는 한 시인이 햇살 좋은 날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 그 생각 만으로도 솔바람 한 자락과 꽃내 한 줌이 귓전에 코끝에 달려온다. 그가 바라본 곳은 마당 저쪽, 햇살이 유난한 곳이었다. 거기 금속의 한 사면(斜面)이 햇살을 되튕겨내고 있었다. 이 숟가락의 주인이던 홀로 사는 화순 산골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고요한 죽음과 아마도 평생의 노동의 잔흔이었을 통장과 도장. 검정 고무줄에 매달린 그것을 마을 사람들이 발견하고는 할머니를 묻고 장사지내는데 썼다. 시인은 이 독거노인의 초상집에 갔다가 우연히 주인을 잃은 저 숟가락을 발견한 것. 한편의 영화같이 길고 쓸쓸하고 애잔한 이야기를 박남준은 중얼거리듯 툭툭 내뱉는 몇 마디에 싣는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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