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정훈의 '죽은 아내를 곡(哭)함'

조강 삼십년에 즐거운 일 없건마는/불평 사색을 내게 아니 뵈었더니/머리털 늙은 날 버리고 혼자 가려 하는고

정훈의 '죽은 아내를 곡(哭)함'

■ 조강(糟糠)은 술찌꺼기와 쌀겨를 말한다. 가난한 날 살뜰하게 그런 것들을 챙겨 빈 속을 채워주던 여자가 조강지처, 바로 오래된 아내이다. 삼십년간 날 위해 술상을 차려주고 밥상을 차려주던 그 여자를 위해 내가 해준 일은 별로 없다. 사색(辭色)은 말과 얼굴빛이다. 불평이 없었을 리 없건마는 나를 탓하는 말이나 표정을 한번도 내놓지 않았던 그 사람. 그러니 저 사람은 당연히 나를 위해 무던히 있으리니 생각을 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을 감는다. 당신 어찌 평소 스타일답지 않게 그렇게 훌쩍 가시는가. 김광석이 부른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와, 어찌 이리도 닮았는가. 조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애환은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이것도 노래이니, 가만히 읊조려보라. 단 세 줄에 녹아있는 미안함과 서러움이 물컹하게 들이치지 않는가. 정훈(1563-1640)은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인조반정을 모두 겪었던 풍운아이다. 그 난리통에 동고동락했던 아내를 잃은 것이니, 슬픔은 더욱 지극했을 것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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