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정위의 정유업계 '마녀사냥'

[아시아경제 임선태 기자]“브랜드도 자산입니다. 담합이라는 주홍글씨로 소비자 뇌리에 박힌 부정적 인상은 고스란히 업계 몫이죠. 결과로만 놓고 볼 때 주주들 입장에서는 배임 행위와 다를게 없지 않습니까.”

지난달 30일 S-Oil 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원적지 관리 담합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것으로 확인된 직후, 업계 반응을 묻는 질문에 한 정유사의 직원이 익명을 전제로 던진 발언이다. 그의 발언 요지를 종합해 보면 공정위의 잘못된 조사로 회사는 물론 본인도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법원에 의해 사실관계는 가렸지만 '부도덕성'에 대한 낙인은 회사가 그대로 떠안고 가야하는 데 불만을 터트렸다.

직원 신분임을 떠나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는 주주로서 브랜드 자산 가치 하락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냐는 성토도 이어졌다. 정유업계의 한 직원은 “정확한 수치를 산정할수는 없지만 공정위의 담합 판결이 결과적으로 지난 1년여간 해당 회사의 자산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공정위도 응당 책임을 져야하는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처분이 업체는 물론 주주들에게도 수백~수천억원이 걸려있는 만큼 신중을 기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다. 다른 한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과징금 판결에 대한 행정소송 결과는 보통 수년째 진행되는게 관례지만 이번 건에 대한 판결은 이례적으로 빨리 나왔다”며 “공정위 판결의 부당성이 명확하다는 것이 증명된 셈 아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당시부터 정유업계는 공정위가 특정업체 관계자의 일방적 진술에만 의존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했다며 강력 반발해 왔다. 이후 공정위 판결에 불복한 S-OIL은 즉각 항소했고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는 이의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2개월여 뒤 행정소송에 합류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보다 폭넓은 조사가 선행돼야 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지난 상반기 이례적인 어닝쇼크를 경험했던 정유업계. 올 하반기 또한 장기화된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턴어라운드가 여의치 않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물론 철저한 조사가 선행된 올바른 담합 판결은 소비자들의 권익 향상과 가격 왜곡 방지를 위해서라도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공정위의 역할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1년 만에 번복할 만큼 허술한 조사였다면, 그 판결에 상처입었을 업계와 주주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도 공정위의 몫이다.



임선태 기자 neojwal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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