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이육사의 '황혼' 중에서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정성된 맘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보련다/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도시의 사무실에서 낮시간을 모두 보내는, 직장생활이 중요한 슬픔은 황혼을 제대로 볼 겨를이 없다는 점이다. 지구에서 몇 안되는 태양족의 피를 물려받은 존재로, 광활한 붉은 우주를 마주하고 노을을 흡입하던 '위대한 저녁답'의 기억이, 이제 어린 시절의 앨범 속에나 꽂혀있을 따름이다. 이육사는 골방에서 시를 쓰다가 노을을 만났다. 붉은 빛줄기가 얼굴에 쏟아져내리는 느낌을 그는 키스처럼 생각했다. 태양과 입맞춘 사나이는, 입술 위의 따스한 온기를 어딘가에 보내고자 하였다. 지구의 모든 곳에 있는, 괴로운 자, 외로운 자, 슬픈 자, 지친 자들에게, 노을 한 점을 보내, 위로하고 싶어했다. 평생 식민지를 살다간 서럽던 시인이, 지금 사무실귀신인 내게도 노을키스를 나눠주고 있는 셈이다. 따스하다.



이상국 기자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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