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는 플라스틱'이 지구오염 해결사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인류의 역사는 '소재'로 구분된다.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이어 20세기는 플라스틱의 시대였다. 플라스틱이 처음 발명된 것은 18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기는 당구공이다. 이 때 당구공은 코끼리 상아를 깎아 만들었다. 그런데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아프리카 코끼리 수가 줄어들어 상아 수급이 어려워진다. 당구공 제조업자들은 1만달러의 상금까지 걸고 상아를 대체할 당구공 소재를 찾았다.

미국의 인쇄업자였던 존 하이엇(John. W. Hyatt)도 새로운 당구공 만들기에 도전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질산섬유소를 장뇌와 반응시켜 최초의 천연수지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후 1907년에는 합성수지를 원료로 한 베이클라이트가 만들어졌고, 1933년에는 가장 많이 소비되는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이 등장했다.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어떤 모양으로든 가공하기 쉬운 플라스틱은 우리 삶의 형태를 바꿔놨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면 태반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스틱에도 치명적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환경오염 문제였다.
북태평양의 플라스틱 쓰레기 섬. 이 섬의 면적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북태평양의 플라스틱 쓰레기 섬. 이 섬의 면적은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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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 불러오는 플라스틱=플라스틱은 썩지 않는다. 수명이 약 450년에 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플라스틱을 '1회용'으로 사용한다. 플라스틱으로 된 음료수병, 포장재, 비닐봉투 등 전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들이다. 재활용을 하면 되지 않을까? 말처럼 쉽지 않다. 전세계에서 매년 3억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지만 재활용되는 것은 10%에 불과하다. 플라스틱이 유발하는 해양 오염도 심각하다.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난 40년간 10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 한가운데 지름 1mm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모여 생긴 '플라스틱 섬(Plastic Island)이 생겨났을 정도다. 1997년 북태평양에서 처음 발견된 이 쓰레기 섬은 지금 미국 텍사스주 크기와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 주변 지역의 어류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어류 중 35%의 뱃속에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 있었다. 플라스틱을 소각하면 어떨까? 플라스틱을 소각하면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다이옥신과 같은 환경호르몬이 발생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플라스틱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플라스틱의 주 원료는 원료를 증류할 때 나오는 나프타(중질가솔린)다. 이를 다시 가열해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만들어 고체 형태로 만든다. 이런 석유화학 공정에서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게다가 원유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플라스틱의 장점으로 꼽히는 저렴한 생산가격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썩는 플라스틱' 대세 된다=최근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 플라스틱은 '썩는 플라스틱'이다. 땅에 묻으면 미생물이나 분해 효소에 의해 자연스럽게 분해된다. 태워도 다이옥신같은 유해 물질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 생물자원(바이오매스)으로 만드는 바이오베이스 플라스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식물에서 전분이나 셀룰로오스같은 고분자를 얻어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이다. 젖산도 바이오베이스 플라스틱의 원료다. 젖산을 화학적으로 반응시키면 고분자인 폴리젖산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식물성 오일은 폴리우레탄을 제조하는 데 사용된다.

'폐기물'도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옥수수대나 밀짚, 볏짚처럼 상품가치가 없는 것도 훌륭한 원료다. 죽은 나무같은 임업 폐기물도 가능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잘 썩을 뿐더러 태워도 식물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이산화탄소만을 내보낸다. 식물로 만드는 플라스틱이라 고유가로 가격이 오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바이오 플라스틱의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예측에는 이견이 없다. 온실가스 배출 저감이 산업계 전체의 과제로 제시되면서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바이오 플라스틱 수요의 60%는 유럽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데, 유럽에서는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 규모가 매년 35%씩 증가해 2020년 전체 플라스틱 시장의 10% 수준을 점유할 것으로 내다본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물론 아직까지 해결돼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생산 단가가 비싸고, 기존 플라스틱만큼의 내구성이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오 플라스틱 사용은 이미 상당부분 이뤄지고 있다. 코카콜라는 2009년부터 재활용 가능한 음료수병인 '플랜트보틀'을 사용해왔다. 플랜트보틀은 바이오 플라스틱을 30%가량 혼합해 사용한다. 지난해에는 화학기술업체들과 손잡고 100%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만든 용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밖에도 포장재나 전자제품 등에 바이오 플라스틱이 적용되고 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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