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켓 퀸' 정선민 "29년 농구공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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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바스켓 퀸’ 정선민(38·KB스타즈)이 29년간의 정들었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정선민은 30일 오전 11시 서울 등촌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사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선택한 계기와 심경, 향후 계획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마이크 앞에선 그는 “지난 29년 동안 선수로서 정말 행복했다. 젊음을 모두 코트에 바친 것이나 마찬가지다”며 “코트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이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공식 은퇴식 자리는 여자농구선수로는 최초다. 남긴 이력은 그만큼 화려했다. 마산 산호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잡은 정선민은 마산여중·고를 거쳐 1993년 실업팀 선경증권에서 성인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신세계와 신한은행을 거치며 통산 9번의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고 정규리그 MVP와 득점왕을 각각 7번씩 차지했다. 통산 8140점을 올린 그는 국내 선수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기록으로 전설을 써내려갔다.

활약은 대표팀에서도 계속됐다. 16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를 누빈 정선민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2년 세계선수권 4강, 2007년 아시아선수권 우승,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우승 등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기량을 인정받아 2003년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시애틀 스톰에 진출하기도 했다.

선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탓일까. 작별 인사를 건네는 순간에도 그는 당당하고 밝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던 농구공과 이별을 고하면서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다음은 정선민과 일문일답

- 본인의 농구인생을 한 마디로 인생을 정리한다면
멋모르고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공을 잡았다. 언론에 노출이 되고 이름을 알린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굉장한 기록과 영광스런 일이 많았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했다고 말하고 싶다.

- 농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아쉬운 점은
1번 끼기도 힘든 우승반지를 9번이나 받았다. 그 순간 모두가 영광스럽고 기쁘다. 올 시즌 국민은행 이적 이후 마지막 우승을 선사하고 싶었는데 준우승에 머물러 안타깝고 아쉽다. 그 부분이 미련에 남는다.

- 포스트 정선민을 꼽는다면
현역생활 동안 다른 선수들과 색깔이 겹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솔직히 포스트 정선민은 없었으면 좋겠다. 실력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캐릭터와 닮은 후배가 나오지 않아야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 남자친구가 있다고 공개했는데 결혼 때문에 은퇴를 선택했나
결혼 때문은 아니다.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농구만 하다 보니 개인적인 생활이 없었다. 나이를 먹다보니 딜레마도 생기고 코트에 들어서면 좋지만 비시즌 동안 너무 치열했고 후배들과 경쟁하는 것이 힘들었다, 계속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이 있었다.

- 전주원과 특별한 상의를 했나. 덧붙여 자신의 농구 인생을 점수로 표현한다면
은퇴를 논의한 건 부모님과 남자친구가 유일하다. 주원 언니는 나중에 연락이 왔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해줬다. 농구인생을 점수로 표현하자면 120점을 주고 싶다. 정선민이니까 가능한 기록을 남겼다고 자부한다. 농구장을 떠나서도 내세울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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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계 해체 등 최근 여자농구와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안타까운 일이다. 선수 입장에서는 이름 석 자 달고 어느 팀에서 뛰느냐가 곧 홍보다. 팀 성적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선수를 믿고 지원해줘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자 농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선수들도 여자농구에 대한 자긍심을 잊지 말고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 본인은 타고난 선수라고 생각하나
선천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에는 평범한 선수였다. 고 1때 감독님이 특별 훈련을 시키면서 3~4개월 만에 실력이 늘었다. 첫 춘계대회에서 평균 득점 28점을 올리면서 처음으로 정선민이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뭔가에 목말라 있었고 훌륭한 선배들을 본받겠다는 희망 때문에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 남자농구 서장훈과 자주 비교되는데 특별히 전할 말이 있나
추승균과 묶어주셨으면 했다.(웃음) 은퇴를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는 추승균이다. 늘 묵묵하게 자기 역할을 하면서 나이 먹어서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마무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은퇴를 하려는 이유도 모든 사람들은 잘한다고 하지만 스스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인들과 서장훈에 대해서도 가끔 얘기한다. 개인적으로 욕심 안 부리고 냉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모습이 팬들한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인지 생각했으면 좋겠다. 장훈이는 그동안 농구에 한 획을 그었으니까 멋지게 잘 마무리하리라 믿는다.

- 이기적인 선수라는 평가가 있는데
선수생활하면서 늘 구설수에 올랐다. 이기적이라는 평가는 좋은 뜻인 것 같다. 적당히 잘하고 자기관리하면 늘 좋은 얘기만 한다. 예전에는 그게 부러웠지만 월등히 잘하니까 안 좋은 얘기도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고 싶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와 힘이 된 존재는
정말 많다. 프로와 아마추어 생활을 하면서 감독님이 추구하는 농구를 잘 흡수했다. 모든 감독님이 스승이고 은사다. 특별히 힘이 되 준 사람은 후배들과 동료들이었다. 슬럼프가 왔을 때 다시 기운을 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도와 준 것도 선수들이었다.

- 나중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농구코트에서만큼은 다방면에서 다 최고였던, 공을 가지고 놀 때가 제일 멋있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해설가에 대한 생각은
후배들이 말을 잘한다고 하는데 남들에 대한 평가를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다. 만약 해설을 하게 된다면 조율이 필요하다. 미국프로농구(NBA) 중계도 많이 보는데 해설 분위기가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틀을 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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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너무 짧아서 아쉬웠다. 미국에 있는 6개월은 29년 선수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준 터닝 포인트였다. 트라이아웃이 아닌 정식 드래프트를 거쳐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에서는 경기를 못 뛴다고 우려했지만 미국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자체로 많은 공부가 됐다. 지금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 농구공에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면
농구공은 내게 인연이었다. 태어나서 절반 이상을 농구공과 함께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한국 여자농구의 최고 위치에 올랐다. 늘 감사하고 나중에 자식을 낳더라도 엄마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게 됐다. 평생 농구를 사랑하면서 정말 행복했다.

-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점보시리즈와 농구대잔치, 시드니 올림픽 등 최고 전성기를 보냈다. 지금도 그 팬들이 한국농구를 사랑해 주는 것 같다. 나는 때를 잘 타고난 선수인 것 같다. 이런 팬들이 있어 늘 감사하고 행복했다. 앞으로 후배들이 더 열심히 뛰고 노력할 것이다. 여자 농구를 많이 사랑해주고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 향후 계획은
시즌이 끝나고 4월 한 달간 너무 정신없었다. 당분간은 뭘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한 숨 돌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님과 여행도 가고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해보면서 계획을 만들어 나가겠다.




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 sport@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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