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명 칼럼]오너 리스크와 법인격 방패

[아시아경제 이주명 논설위원]'오너 리스크(owner risk)'가 어느새 기업 리스크의 일종을 지칭하는 정식 용어처럼 쓰이게 됐다. 우리말로 옮기면 '소유주 위험'이나 '기업주 위험'쯤 되겠다. 대주주(지배주주)와 관련된 사건이나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이 기업에 타격을 주고 이해관계자에게 손해를 끼칠 가능성을 가리킨다. 주주를 대리하는 경영자가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세계적으로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니 '경영자 위험'이니 하는 말로 지칭됐다. 이에 비해 오너 리스크는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그것도 외환위기 이후에나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말이 요즘 언론을 중심으로 부쩍 많이 사용된다. 흔히 '회장'으로 불리는 대기업 지배주주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발생해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선친이 남긴 차명주식의 상속을 놓고 형제들과의 분쟁에 휘말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배임ㆍ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은 탈세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이호진 태광산업 회장은 횡령ㆍ배임죄가 인정되어 실형을 선고 받았다. 모두 주가 하락과 사업 차질 등 여러 측면에서 해당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이런 일이 빈발하다 보니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재벌기업의 오너 리스크와 투자자 보호 방안'이라는 논평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입법조사처는 "오너 리스크는 외국의 경우 독단경영으로 인한 경영실패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배임이나 횡령 등의 범죄적 내용이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해 기업 위험에서의 후진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좋은 것도 아닌 오너 리스크마저 후진적이라니 더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의 오너 리스크가 증시에 상장된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상장 대기업만의 문제라면 투자자 보호 방안만 강구하면 될지 모른다. 상장 대기업은 내부감사 체제를 갖추고 있어 상대적으로 경영이 투명한 데다 증시감독 기관의 감시도 상시적으로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모의 대소를 떠나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비상장 기업 중에도 오너 리스크가 심각한 경우가 많다.

비상장 기업에서는 투자자 보호보다 종업원과 채권자 보호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중소기업의 오너 경영자가 회사 돈을 개인재산으로 착각해 개인적인 목적으로 운영하다가 잘못되면 종업원과 채권자가 무방비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실제로 오너가 회사 돈을 가지고 투기적 금융 및 부동산 투자에 나서거나 개인적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벌였다가 큰 손실을 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경우 자칫하면 현금시재가 고갈되어 임금을 체불하거나 채무를 이행하지 못해 기업이 위기에 빠질 수 있다.아무리 작은 사업체도 주식회사로 법인화했다면 대주주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주식회사에 법인격을 부여해 의무와 함께 권리의 주체가 되게 하는 것, 담보가 불충분해도 외부 자금을 쉽게 빌릴 수 있게 해주는 것, 주주 책임의 유한성을 인정해 주는 것 등도 다 그렇기에 주식회사에 제공되는 사회적 혜택이다. 주식회사 대주주가 이런 혜택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다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는 주식회사의 법인격이 부인된다고 봐야 한다. 그런 대주주에게는 주식회사가 법률적 면책의 방패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현실에서는 주식회사의 이해관계자가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미비한 게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이에 관한 개선 대책이 요구된다. 소수주주권과 종업원 경영참여권을 강화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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