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참을 수 없는 세제의 가벼움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1992년에 나온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는 사랑을 좇다 결국 세 나라 이름을 갖게 된 여인의 기구한 삶을 그린다. 명자로 살던 여인은 아끼꼬였다가 다시 쏘냐가 된다.

7일 새삼 부각된 윤영선 전(前) 세제실장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며 문득 이 영화가 떠오른 건 정치판 풍향계에 따라 '정(正)'이었다 돌연 '사(邪)'가 돼버리는 세제의 팔자가 사납다 여겨져서다. 윤 전 실장은 지난해 박사학위 논문에서 "법인세 감면액의 절반이 10대 기업에 돌아갔고,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는 대표적인 대기업 위주의 지원 제도"라고 했다. 논문을 보면, 2009년 기업들이 감면 받은 세금은 3조6350억원 규모, 여기서 약 절반인 1조7665억원을 10대 기업이 챙겼다.

'트리클다운(Trickle Down·낙수효과)' 효과를 내세워 이 정부의 감세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그의 논문은 자기부정이다. 감세 정책이 대기업에만 유리하다는 보도를 숱하게 반박해온 재정부는 이날 차마 '보도해명자료'를 내지 못하고 '참고자료'로 민망함을 덜고자 했다.

돌아보니 윤 전 실장의 말 바꾸기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부동산실무기획단 부단장으로 종합부동산세 설계에 참여했다. '종부세 부담 과하지 않다(국정브리핑 기고)'는 제목의 글엔 종부세에 대한 확신이 담겨있다. 그랬던 그가 MB정부의 세제실장이 된 다음엔 "종부세는 담세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세부담으로 지속이 불가능하다"며 정반대의 논리를 폈다. 스스로 낯이 뜨거울테니 윤 전 실장의 알쏭달쏭한 세정 원칙에 개인의 양심을 운운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 이런 상투적인 레토릭 뒤에 숨겠다 한들 말릴 수 없는 일이다.

마침 정치권의 시한부 증세 경쟁이 한창이다. 누군가 윤 전 실장의, 감세 정책의, 종부세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정권에 따라 명자였다 아끼꼬였다 쏘냐가 돼버리는 이 '참을 수 없는 세제의 가벼움'을 어쩌면 좋을까. 그나저나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윤 전 실장은 어떤 세제 편을 들지.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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