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나체시위를 보는 법(法)

[아시아경제 백재현 기자]요즘 알몸 시위로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지난달 말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피맨(Femen) 소속 여성회원들이 상의를 벗은 채 ‘당신들 때문에 가난하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보수적인 나라 이집트에서 젊은 여성운동가가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전라(全裸)의 사진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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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슬람 사회에 만연한 폭력, 민족 갈등, 성차별 등의 위선적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싶어 사진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대만의 이효리’라 불리는 여가수 리미는 마잉주 대만 총통이 집무하는 타이베이 중심 총통부앞에서 핵에 반대하는 누드퍼포먼스를 벌이다 체포됐다.한국에서도 이른바 ‘나꼼수 비키니’ 논쟁이 한창이다. 한 여성이 자신의 가슴에 ‘가슴이 터지도록 정봉주 나와라’라고 쓴 사진을 공개했고 아니나 다를까 논쟁이 불붙었다. 성(性)을 도구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다 중견 여성 방송기자가 지지하는 의미로 비키니 인증샷을 올렸고, 발원지 격인 나꼼수 진행자인 김어준씨는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한 것은 사실”이란 말로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류사에 이 문제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논란도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모 방송사에서 끝장을 보겠다며 토론의 주제로 잡았다지만 그게 어디 날밤을 새는 토론으로 끝장이 날 일이던가. 그 사회의 문화 형태와 경제 수준, 게다가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까지 복합적인 기준이 섞여 있는 문제라 답을 내리기에는 애초에 불가능 하다. “차라리 머리를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可斷頭 不可斷髮)을 외치던 시대에 삭발투쟁과 컬러 머리가 자유로운 오늘날의 삭발투쟁을 같이 평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꼭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시위의 목적이다. 나체 시위 당사자들도 어느 정도 의도는 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해당 사안을 사회적 논란거리로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슷한 시위가 그래왔던 것처럼 논점을 전혀 엉뚱한 곳으로 이끌어 가버렸음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가슴이 터지도록 쓴 글’보다는 ‘터질 것 같은 가슴’만 기억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묘히 시선을 물리적인 가슴으로 이끌어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세력도 없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여기서 기자는 나체 시위를 순수한 저항의 수단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성을 도구화하는 외설스러운 것으로 볼 것 인가하는 판단의 어느 한쪽에 서고 싶지 않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자세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J.M.콜리어의 그림 중에 유명한 ‘고다이바 부인’이란 작품이 있다. 붉은 천을 두른 백마 위에서 관능적 여인이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거리를 지나는 모습의 그림이다. 보기에 따라 애로틱하기 그지 없다. 그림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11세기 영국 코번트리시의 영주의 부인이었던 고다이바는 남편의 과도한 세금에 고통스러워 하는 주민들을 위해 용감히 진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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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남편은 “당신이 발가벗고 거리를 한 바퀴 돌면 세금을 줄이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부인은 맨몸으로 말을 탄 채 거리를 돈다.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은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아 그녀의 수치심을 보호한다. 실제로 그림의 배경에는 사람하나 보이지 않고 황량하다. 외설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이 그림 이면에는 이처럼 수많은 사람의 깊은 마음 씀씀이가 숨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코번트리 마을에는 매년 ‘고다이바’ 축제가 열린다. 이 그림으로 인해 ‘고다이바이즘(Godivaism)’이란 말이 생겨났다. 높고 가치있는 뜻을 관철하기 위해 상식을 뛰어넘는 논리를 표현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논쟁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점에서 이런 제안을 해보면 어떨까. 가슴을 드러내고, 알몸으로 외치는 주장이 외설스럽거나 역겹다면 문을 닫아걸고 창문을 내리라고.



백재현 기자 itb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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