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극작가 출신으로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를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한 '벨벳혁명'의 지도자였던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사진)이 18일(현지시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이날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하벨은 1996년 폐암 수술 이후 순환기 계통 질병으로 계속 치료 받다 이날 동틀 무렵 합병증으로 체코 북부의 주말용 별장에서 잠든 채 숨졌다.하벨은 1989~93년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을 역임하고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후 2003년까지는 체코 대통령으로 활동했다.
하벨의 아버지는 부유한 식당 주인이었으나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정부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했다. 그는 부르주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순탄한 교육과정을 밟지 못했다. 그러나 가까스로 1951년 화학 실험 전문가 과정에 입학하고 김나지움 야간 과정에서 공부했다. 인문학 분야 고등교육 과정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체코 기술학교의 경제학과에서 잠시 공부했다.
군 복무 후인 1959년 하벨은 프라하의 한 극장에서 무대 담당자로 일자리를 얻었다. 그러던 중1968년 밸러스트레이드 극장 상임 극작가로 진출했다. 그는 이른바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1968년 개혁운동 당시 두드러진 활동상을 보였으나 소련의 일제 단속으로 그의 희곡은 금지됐다.하벨은 1977년 서방에서 크게 주목 받은 인권 선언문인 '77조 헌장'을 공동 집필하면서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 그는 당국에 여권까지 압수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0~80년대 반정부 인권운동으로 거듭 체포돼 그는 4년 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89년 1월 하벨이 시위 중 또 체포돼 재판에 넘겨지자 체코슬로바키아 안팎에서 당국에 거센 압력이 가해졌다. 사회주의 정권은 이에 굴복해 그 해 5월 그를 석방했다.
이어 같은 해 가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하는 가운데 하벨을 중심으로 전개된 반체제 운동은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체제를 결국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것이 이른바 무혈 '벨벳혁명'이다.
1989년 12월 29일 체코슬로바키아 임시 대통령으로 선출된 하벨은 이듬해 7월 연방 대통령으로 재선됐다 1992년 7월 연방 분리와 더불어 사임했다. 이후 1993년 1월 26일 체코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퇴임 후에도 세계적인 인물로 남은 하벨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여러 차례 올랐으며 미국 대통령 자유 메달 등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여럿 받았다. 2004년에는 제7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했다.
하벨의 첫 단막극 '옥외 파티'(1963)는 관료주의적 타성이 인간을 몰개성화하는 과정에 대해 풍자한 부조리극으로 그의 작품들을 대변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희곡 '비망록'(1965)은 인간관계를 완전 파괴하고 비양심적인 권력투쟁을 가져오는 거대한 관료주의적 기업을 난해한 기교 언어로 묘사한 작품이다.
하벨은 이후 작품들에서 전체주의 정치체제 속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자기기만적인 합리화와 도덕적 타락에 대해 천착했다. 후기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이 '가중되는 집중화의 문제'(1968), 단막극 '관객'(1975), '개인적 관점'(1975), '저항'(1978) 등이다.
2008년 초반 연극 무대로 복귀한 하벨이 퇴임한 지도자의 고난을 그린 희곡은 평단으로부터 호평 받았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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