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소년공작대의 미소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후련하다, 후련해.”
법정을 나서는 초로의 남성이 내뱉은 한마디다.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해오던 이야기는 가깝게는 지난해, 멀리는 60년 전인 195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고법 행정9부(조인호 부장판사)는 24일 김모씨 등 6명이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를 상대로 낸 보상금환수결정 취소를 구한 소송 항소심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들 여섯 명은 북파공작원(HID) 출신이거나 혹은 그들의 유족들이었다.

1951년 6월 파주 탄현의 한 마을. 당시 HID부대 J소위는 2차대전 당시의 독일 나치소년단을 모방해 이 마을서 15세 미만 어린 학생 30여명을 모아 HID 소년공작대를 조직했다. 단지 이장집으로 모이라는 연락만 받고 갔던 이들 소년들은 군부대로 강제 인솔돼 2주간 첩보기술 등을 배워야 했다. 모집된 지 한 달여 만에 적진에 투입된 이들 소년들은 일부는 곧 돌아와 귀가조치됐지만 그 중 태반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으로 미확인조치됐다.

어린 나이에 모진 경험을 했거나, 날 무렵부터 아버지를 보지 못한 이들 6명은 2005년 관련법에 따라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을 신청했고, 이후 2007~2008년에 걸쳐 각 1억1600만~1억3900여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보상심의위는 돌연 '첩보부대에서 근무한 사실이 없는 자로 확인됐다'며 이들 보상금을 모두 환수하는 결정을 해, 이들 6명은 소송을 내게 됐다.

1·2심 모두 “진술이 다소 불일치하더라도 소년공작대가 구성돼 이후 이북 파견이 정해진 사실은 모순없이 일관되며, 관련자들의 전사확인 시점에 비춰 상당수가 특수임무와 관련해 사망했을 개연성이 있다”며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국가를 상대로 한 재판결과가 나오자 눈물을 쏟아내는 북파공작원들을 맨 처음 위로한 건 변호인들이었다. 변호인들은 “어차피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법리만 보니까,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이젠 좀 (정부가) 그만 놓아줬으면 합니다”며 김씨 등 그간 속태워온 원고들의 어깨를 다독였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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