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잎이 진다. 멀리에 선 듯 잎이 진다. /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어 가는 듯 /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 그리고 깊은 밤중에 무거운 지구가 고독에 잠긴다. / 다른 모든 별들에게서 벗어나. // 우리들 모두가 떨어진다. 이 손이 떨어진다. / 보라. 다른 것들을. 모두가 떨어진다. //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있어, 이들 낙하를 / 한없이 너그러이 그의 양 손에다 받아들인다.
[아, 저詩]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 릴케의 눈은 하늘의 먼 정원과 무거운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광폭의 시야를 거느린다. 낙하하는 것들을 양 손에 받아들이는 어떤 사람. 그는 누구일까. 이 따뜻한 언어로 세상의 추락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인 자신일까. 아니면 대지의 품을 그렇게 말한 것일까. 일차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결국은 죽어가는 목숨을 거두어들이는, 시간이 펼치고 있는 손이다. 모든 삶들은 가을에 직면할 것이며, 그들은 떨어진다. 내가 펼쳐든 이 손 또한 같은 방식의 낙엽이 될 것이다. 그것을 다 받아주는건 죽음의 시간이다. 세상 모든 사물의 추락을 기다렸다가 묵묵히 가 받아주는 존재의 발견.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그는 한없이 너그러운 손이라고 부른다. 릴케만큼 가을의 진상을 명쾌하게, 그리고 따스한 겹눈으로 바라본 사람이 있었을까.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이상국 기자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