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1 강남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김우현씨(55ㆍ가명)는 최근 만기된 펀드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증시 상승기에 투자한 펀드로 3억원 정도의 여유자금이 생겼지만, 새롭게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뾰족한 투자처를 찾기 위해 은행 PB(Private Bank)센터를 찾은 김씨에게 담당 PB는 "지금 목돈을 주식형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며 당분간은 머니마켓펀드(MMF)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안정적인 상품에 넣어둘 것을 권했다. 평소 공격적인 투자성향인 김씨를 잘 알고있는 담당 PB가 '안정적인 투자'를 권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박종완씨(60ㆍ가명)는 보유 중인 오피스텔 가운데 한 곳을 처분했다. 관리비용도 만만치 않고 공실이 생기니 임대수익률도 좋지 않아서다. 그는 이렇게 마련한 돈을 PB의 자문을 받아 예금과 채권, 주가연계증권(ELS), 채권형 상품 등에 골고루 분산시켰다. 박씨는 "처음에는 안전한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PB의 말에 수긍이 가지 않았는데, 경제 상황도 좋지않은데 굳이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은행권 PB들이 고객들의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 IMF,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부자들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라고 보는 성향이 강하지만 아직은 몸을 웅크리고 세를 살펴봐야할 때라는 판단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아직 대내외 경제에 대한 판단이 안 선 상태입니다. 흐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투자했다간 다시는 시장에 참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박승안 우리은행 강남투체어스 PB팀장은 올 여름부터 만기가 돌아온 고객을 대상으로 포트폴리오를 안전자산으로 하나씩 변화시켜 나갈 것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고객들이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루나 이틀 연속 증시가 폭등하면 고객 항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그는 "하루 오르고 하루 빠지는 변동성 장세에서 일희일비하며 대응하는 것보다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고객을 설득했다. 변동성 장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지자 고객들은 박 팀장의 전략에 수긍하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 성향이 강한 고객들이 많은 여의도 PB센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김일환 신한은행 여의도PB센터 팀장은 최근 들어 고객들에게 안정성향 위주의 채권형 상품이나 저축성보험, 연금보험 등 시장에 연동받지 않는 상품들을 위주로 권하고 있다. 투자형 상품으로는 ELF나 ELS로만 권하고 있다. 김 팀장은 "사실 주식형펀드는 저가매수의 매력이 있기는 하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하다고 판단해 적립식 펀드 정도로만 권하고 있는 정도"라고 전했다. PB들이 이처럼 고객들의 공격적인 포트폴리오를 방어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은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 향방을 점치기 어려운데다, 투자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아 장기투자만이 답이라고 생각해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무조건 고수익을 추구하는 전략보다는 자산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정진섭 국민은행 WM사업부장은 "지난 8월부터 시장이 워낙 흔들리는 바람에 투자 타이밍을 많이 놓친 것은 사실"이라며 "지금 투자할 자금들은 장기적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모두들 저점 분할매수나 채권형 투자를 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안전한 투자를 권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몇일간 연속으로 장이 폭락하거나 하면 고객들이 허탈감을 보이는 바람에 진정시키고 포트폴리오를 탄탄히 구성하는데 초점을 맞춰주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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