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베어물면 유산균 50억 마리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2006년 미국 건강 전문지 '헬스'는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그리스의 '요구르트', 스페인의 '올리브오일', 일본의 '낫토', 인도의 '렌틸콩' 등 이름을 대면 알만한 세계의 유명 식품과 당당히 어깨를 겨눈 것이다. 이는 김치의 영양가치가 최고의 발효식품으로 입증되고 독특한 맛이 널리 인정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건강식품으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서양이 식초를 이용해 채소를 저장하는 방식을 고안했듯이 한국의 김치는 채소 보존기술의 하나로 그 과학성이 입증된 것이다. 오늘 지식의 주인공은 바로 '김치(kimchi)'다. 김치가 기무치(kimuchi)를 제치고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로 선정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바로 이 '발효'의 과학에 있었다. 기무치는 발효식품이 아닌 그저 샐러드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몸에 유익한 과학, 김치= 김치의 건강성에 대한 연구는 노화방지를 위한 식단에서 시작됐다. 노화를 늦춰준다는 김치의 노화예방 효과는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송영욱 교수팀에 의해 과학적 효능이 입증됐다. 송 교수팀이 노화가 빨리 진행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노화촉진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김치를 먹인 쥐에게서 성인병 원인 물질이 감소하고 항산화 작용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송 교수는 김치가 노화를 막는 '방부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기존의 화학 방부제와는 달리 인체에 해가 전혀 없는 천연 방부제 성분이 김치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안티-에이징(Anti-aging) 화장품의 필수성분인 '항균 펩티드'(단백질 조각)로, 연구팀은 이를 김치유산균에서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다. 비싼 노화방지 화장품을 바르는 대신 배추 김치를 꾸준히 먹는 것만으로도 피부관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김치의 이러한 노화방지 기능은 부재료로 사용되는 배추 , 마늘, 무 등의 채소에서 기대되는 생리활성 물질 때문이다. 생리활성 물질은 노화를 막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치에 들어있는 생마늘의 알리신 성분은 세포노화를 늦추고 호르몬 분비를 왕성하게 해 노화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자랑한다. 김치에 들어있는 원료 채소의 주요 성분들이 인체에 흡수돼 여러 가지 유익한 생리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이밖에도 대사과정에서 건강에 유해한 '유리기(radicals)'라는 물질을 생산하는데 이 유리기는 몸속에서 과산화지질을 형성하고 동맥경화와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을 일으켜 각종 암과 노화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김치에 포함된 항산화 물질은 이 유리기를 제거함으로써 각종 성인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요구르트보다 우수한 김치 유산균= 김치의 건강 기능은 재료에서 뿐만 아니라 미생물의 발효과정에서도 드러난다. 김치의 신맛을 내는 물질에는 여러가지 유기산들(젖산, 초산 등)이 있는데, 이러한 유기산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유산균이다. 유산균이란, 쉽게 말하면 당을 분해하는 젖산을 비롯해 다양한 산을 만드는 균을 총칭한다. 김치는 젖산 발효식품으로 김치 속 유산균은 채소에 들어 있는 당을 젖산으로 바꿔주어 유해균을 죽이고 김치 특유의 맛을 만들어낸다. 김치가 건강식품이라는 인식도 바로 이러한 미생물 발효 산물들 덕분이다. 김치 속 유산균의 양은 김치 1g당 8억마리 이상이다. 한 입의 김치만으로도 최소 40억~50억 마리의 유산균을 먹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요구르트보다 최소 10배에서 최대 100배에 이르는 많은 양이다. 우리가 매일 먹고 있는 김치가 대장의 건강을 개선시키고 있는 셈이다.

한때 장수마을 거주자가 도시 거주자에 비해 대장 내 미생물이 3~5배 많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미생물로 인해 나타나는 '발효'의 효과에 대한 관심은 세상의 주목을 끌었다. 발효 유산균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체내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세포를 강화시켜 주는 등 미생물들이 우리 몸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정가진 교수는 “대장에 살고 있는 미생물은 소화기 계통은 물론이고, 염증성 질환이나 암, 심지어는 신경계 질환까지 연결돼 있다”며 “언젠가는 김치 유산균에서 추출한 약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치속 발효 유산균의 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 유용한 효소와 항산화물질, 항암물질 등 생리활성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광주과학기술원의 임신혁 교수는 “김치유산균 중 'IRT5'라는 이름의 추출물이 면역조절에 관여하는 'T세포'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 특별한 유산균이 면역질환 치료에 응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면역질환은 염증성 장질환,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성 접촉성 피부염, 류머티스 관절염, 다발정 경화증 등이다. 대부분 완치가 어려운 만성질환으로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질병들이다. 임 교수에 따르면 T세포의 분화를 증진시키는 유산균을 투여함으로써 이러한 질환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김치야 말로 살아있는 장수불로초인 셈이다.

◇제3회국제김치컨퍼런스
세계김치연구소는 광주광역시와 공동으로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김치와 인류 건강'이란 주제로 제3회 국제김치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세계김치연구소 관계자는 "김치컨퍼런스는 김치와 인류 건강과의 연관성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 학문적 토론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김치의 세계화는 물론 세계인의 건강에 기여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유진 기자 tint@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