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유럽이 일단 한숨을 돌렸다. “긴급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내몰렸던 유로존은 지난 며칠 동안 독일 국사재판소(헌법재판소)의 유로존 부채 국가 지원 합헌 결정과 이탈리아의 수정긴축예산 상원 통과,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은행 평가 방식 수정 합의, 스위스 중앙은행의 프랑화와 유로화와의 사실상 페그제 등 일련의 긴급 조처에 힘입어 주식시장이 연일 4% 이상씩 반등하고 국채 가격 폭락도 진정되는 등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7일(현지 시각) 독일 구제금융 관련 소송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려 유로존 부채위기 전략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고 주요외신들이 이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시장의 유로 붕괴 추측을 부인하면서 유로존 회원국에 대해 대규모 부채 감축을 요구했다.메르켈 총리는 “유로는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독일은 유로존의 채무 과중 국가들에게 긴축재정을 요구하면서 그 댓가로 재정적 보증을 계속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또 메르켈 총리는 유로본드는 채무국 과잉부채 축소 인센티브를 잠식한다는 이유에서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그러나 국사재판소의 합헌 판결은 오히려 독일 정부의 행보에 중대한 제약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제기됐다. 이날 독일 국사재판소는 이번 독일의 그리스 지원안 합헌 판결이 근소한 차로 결정됐다고 밝히면서 ”특히 독일이 다른 국가들의 자의적 결정에 대해 보증을 지는 독일의 어떠한 결정도 기각할 것”이라고 밝혀 독일의회 예산특위의 의결을 거쳐 독일 정부가 요구하는 조처를 수행하는 경우에만 다른 국가를 지원할 수 있도록 엄격히 한정했다.
이와 함께 그리스는 공공부문 인력 20%(15만명) 감축을 약속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상원에서 수정된 긴축재정안이 통과된 것도 호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8일 이탈리아 상원재무위원회 마리오 발다사리 의장의 말을 인용, “오늘 승인된 긴축재정안은 유럽중앙은행이 계속해서 이탈리아 국채를 매입하도록 설득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발다사리 의장은 “우리는 아마도 4주쯤 뒤에은 유럽위원회와 시장에 대해 진실한 답변을 하기 위해 또 다른 수정안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이 일단 숨을 고르기는 했지만, 문제는 유로존 부채 위기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주도권이 점점 채권국(독일)에서 채무국(그리스, 이탈리아)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그리스가 ECB 등과의 논의를 급작스럽게 중단시킨 것이나 이탈리아가 유로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완화된 긴축안을 표결 승인한 것은 이들 국가들이 유로존 국가들의 요구를 거부해도 뾰족한 제재 수단이 없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이들을 유럽공동체에서 탈퇴시키는 것은 유로화의 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며 UBS가 분석한 것처럼 그 댓가가 너무 크다. 최소한 3조 유로 이상의 경제적, 정치적 피해가 예상된다.
결국 앞으로가 문제이다. 일단 독일의 계속 지원 의사 표명으로 유로국가들의 국가 채무 문제는 한숨을 돌렸지만, 은행권의 부실화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동안 세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되어 왔다.
첫째는 핀란드 등이 요구하고 있는 부실 국가 채권에 대한 담보(금) 설정 요구이다. 이탈리아는 세계 4위의 금 보유 국가이며 그리스도 다량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금이 담보로 설정되면 이들 국가의 담보가액은 크게 상승하여,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은행권의 자금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이 방안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두 번째 방안은 IMF등이 주장해 온 특별인출권(SDR)에의 대규모 자금 투입을 통해, IMF와 G20 국가를 포함한 외부에서 유럽 국가 및 은행권을 구제금융해 주는 방안이다. 지난달 말 라가르드 IMF 총재의 발언으로 표면화된 이 방안은 그러나 SDR에 대규모 외환을 보유하고 잇는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참여가 전제조건인데다 유럽 국가들의 주권과 자존심에 심각한 손상이 간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이 방안을 염두에 두고 “유럽의 반응은 이해가 간다”면서 “그러나 유럽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스위스 중앙은행이 유로화의 프랑화에 대한 교환 하한선을 설정한 것은 세 번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핫머니가 몰려 극심한 평가절상을 겪고 있는 스위스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안전통화인 스위스 프랑을 이용해 유럽내의 은행권과 국채를 매입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스위스의 기준 금리가 제로인 점을 이용해, 스위스 프랑의 캐리트레이드를 통해 유럽 내의 금융자산을 매입함으로써 은행권의 숨통을 틔게 한다는 것이다.이 경우 스위스 중앙은행은 이미 부실 국가 채권 매입으로 배드뱅크화한 유럽중앙은행을 대신해 보조적인 유럽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은행의 자본 안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을 모델가격으로 전환하고 그 부족분을 민간자본으로 충당한다는데 IMF도 동의한 것으로 보도되어, 유럽은 스위스를 지렛대로 한 해결책 모색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경우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에 시장 효과는 단기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그동안 유럽의 정치적/경제적 구조를 개편하는 시간을 번 것은 확실하다. 이번 주말의 G7 재무장관 회담 및 20일의 FOMC, 그리고 11월의 G20 회담에서 최종 구제 방안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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