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의 마지막 점심 "나는 행복한 공무원이었다"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지난 2년 4개월동안 나는 굉장히 행복한 공무원이었다"

26일 오후 과천의 한 음식점. 기자들과 사실상 마지막 오찬을 함께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동안 힘을 모아준 재정부 후배들과 건강한 감시자 노릇을 해준 언론에 감사를 표하며 꺼낸 말이다. 윤 장관은 "2009년 2월 취임 직후 3월에 사상 최대인 3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다음 달 국회 승인을 받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기반이 됐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윤 장관은 "G20은 세계사 변방에서 중심부로 진입하는 계기가 된,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라며 선진국 사이에서 협상을 이끌던 그 때를 떠올렸다.

반면 "미안한 것도 많다"고 했다. 영원한 난제 '물가' 얘기다. 윤 장관은 "전 세계 전문기관들이 예상했던 올해 기름값이 배럴당 85달러인데 지금은 110달러를 넘나들고 있으며, 3대 곡물인 콩과 옥수수, 밀 가격도 흉작으로 급등한 상황"이라며 녹록지 않은 물가 여건을 염려했다.

그는 "공급 충격이 수요 충격을 넘어서는 것, 우리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 이상 기후가 한 원인이라는 것이 (물가를 잡지 못한 데 대한)변명이 될 수는 없지만 분명한 요인이 됐다"며 뒤를 이을 박재완 장관 내정자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고 응원했다.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좀체 나아지지 않아 걱정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 장관은 "나라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국민의 삶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중성도 있다"면서 "그래서 나는 내수산업 육성을 외쳤다"고 했다.

그는 "내수 살리기를 위해 서비스 선진화를 하겠다고 했던 것"이라며 "여러 가지 장벽으로 인해 진척이 되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떠나는 마당에도 영리의료법인 도입 등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부분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윤 장관은 "수출과 제조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본,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바로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는 종자돈으로 써야한다. 언론도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그 길을 열어주는 게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소 좋아하는 이 싯구를 끝으로 자리를 파한 윤 장관은 2년 4개월 재임 기간 중 36만7398km, 지구 9.17바퀴를 돌았다. 115번 언론과 마주 앉았고, 250번 브리핑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점심을 함께한 재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위기극복, G20 회의를 언급하지 않아도 조직 안팎에서 참 좋은 정책을 편 역대 손꼽히는 장관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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