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공수민 기자] 대지진 피해복구 재원 조달을 위한 국채발행을 두고 일본은행(BOJ)과 의회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BOJ는 국채매입에 나설 경우 향후 정부 재정과 일본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의회는 중앙은행의 국채매입 외에 재원 조달을 위한 뾰족한 수가 없다며 BOJ를 압박하고 있다. ◆BOJ "국채매입 안된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BOJ 총재는 1930년대식 국채매입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여야 의원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시라카와 총재는 전일 "이례적인 상황에 허용되는 BOJ의 국채 직접 매입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일본의 재정법에 따르면 일본은 BOJ의 국채매입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특별한 상황일 경우 의회의 승인을 받아 국채매입에 나설 수 있다. BOJ는 현재 10조엔 규모의 자산매입계획 등으로 유통시장을 통해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시라카와 총재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직접 매입한다면 초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겠지만, 엄청난 통화량 확대를 이끌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것”이라면서 “이는 가계와 경제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24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정부가 오는 4월말까지 대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긴급예산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채 발행량을 늘릴 경우 정부 부채 부담이 늘어난다"면서 "예산재원 마련과 관련해 국채 발행을 늘리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월 재무성은 오는 4월로 시작되는 2011년 회계연도에 국가부채가 사상 최대 규모인 997조7000억엔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BOJ 국채매입 나서야" 여야 한 목소리 = 그러나 대지진으로 도로, 항만, 주택 등에 미친 직접적인 피해액만 최대 25조엔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재건을 위해 일본 정부는 상당한 규모의 긴급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 의회는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BOJ의 국채매입 외에 피해복구 재원을 조달할 별다른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제1 야당인 자민당의 야마모토 고조 의원은 “피해복구 재원 조달을 위해서는 BOJ가 20조엔 규모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이 바로 BOJ의 국채매입을 허용해야 할 특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야마모토 의원은 “BOJ가 국채를 매입하면 엔 강세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급격한 물가상승은 목표치 설정을 통해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재무성 자문위원인 도이 다케로 게이오대학교 경제학교수는 “현재의 재정상황으로는 일본 정부가 재원 조달처를 확실히 확보하지 않고서는 재건을 위한 지출을 늘릴 수 없을 것”이라면서 BOJ가 국채를 매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1930년대 당시 BOJ의 국채매입으로 일본 경제가 빠른 회복을 보인 선례가 있다며 국채매입을 촉구했다.
가네코 요이치 의원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들은 "일본은 1930년대에 BOJ의 국채매입이 디플레이션 해소에 효과적인 수단임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1930년대 BOJ의 국채 매입은 세계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정책"이라면서 "이는 일본이 다른 국가보다 빠르게 대공황에서 탈출하도록 도왔다"고 설명했다.
일본경제연구센터(JCER)에 따르면 다카하시 고레키요 당시 재무상은 BOJ의 지원사격을 받아 1932년 회계연도에 국채발행량을 두 배로 확대했고 정부지출을 34% 늘릴 수 있었다.
BOJ의 국채매입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기 전까지 14년 동안 지속됐으며, 1933년 BOJ의 국채매입 비중은 전체의 89.6%로 최대를 기록했다.
JCER의 구로누마 유지 연구원은 “다카하시 전 재무상의 노력은 미국이 대공황을 겪는 동안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도록 도왔다”면서 “1933~1934년에 민간소비와 기업고정투자가 크게 늘면서 경제를 부양했다”고 평가했다.
◆세금인상 사실상 불가능= 도이 교수는 세금 인상이 피해복구 재원 조달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홍수 피해를 입은 호주도 피해복구를 위해 세금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는 세금인상으로 18억호주달러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의회에서는 재건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인상하는 방법은 반대하고 있다.이미 지진으로 타격을 입은 민간소비가 세금인상으로 더 위축되면서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
모건스탠리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그룹(MUFG) 증권은 올 2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기준 최대 1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야마모토 의원은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세금을 인상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가네코 의원은 “몇 년 동안 세금 인상은 없어야 하며 일부 세금은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수민 기자 hyun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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