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포럼] 범죄 미리막는 도시설계를

설계부터 범죄예방 개념도입
'人災 피해' 막는 방어공간 설치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 교수] 일본 대지진으로 전 세계가 경악을 하고 있다. 인간이 감히 예측하기 어려웠던, 그리고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려웠던 엄청난 규모의 천재(天災)였고, 자연 앞에 겸허해야 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사고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를 못 막고 있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인재야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노력이 최근 우리 도시에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이 한창 다양한 형태의 재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을 때 미국의 일본계 건축가였던 미노루 야마사키(Minoru Yamasaki)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야마사키에 의해 계획됐던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 아파트 단지는 계획 초기 단계에서 심리학자, 사회학자 등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여러 가지 행태를 감안한 계획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에 주택단지 설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아 유명 건축 상까지 수상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범죄 및 마약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급기야 이 단지는 계속되는 범죄로 1976년에 폭파ㆍ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이 사례는 주민의 행태를 잘 이해하고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잘 설계된 환경으로 범죄를 예방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도시설계와 범죄 사이의 관계를 폭넓게 관찰해 뉴욕을 무대로 기술했던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1961년 저서 '위대한 미국 도시들의 삶과 죽음'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제이콥스는 '거리의 눈'을 통해 거주자와 통행자로부터 특정 공간이 자연적 감시를 받도록 영역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특정 거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 거리의 범죄예방에 기여한다는 믿음에 근거한 말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편하게 거닐고 놀 수 있는 거리나 광장 등 공공 공간을 잘 만드는 것이 범죄 예방의 첫걸음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됐다. 1972년에는 건축가 오스카 뉴먼(Oscar Newman)이 그의 저서 '방어공간'을 통해 연립과 아파트 위주의 공공주택에서 공간관리 및 설계와 범죄의 상관성을 증명했으며, 이로 인해 환경설계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투자가 이루어지게 됐다. 뉴먼의 '방어 공간'의 경우 제이콥스의 저서가 나온 지 10여년 후에 제시됐는데, 이 개념은 제이콥스의 생각과 상당부분 유사하나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특징을 지녔다.

사회적 교류로 범죄예방을 시도했던 제이콥스는 바람직한 도시생활의 부수적 결과로서 범죄예방을 인식했다. 반면 뉴먼은 범죄예방 자체를 목적으로 건물과 외부공간이 설계돼야 한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이로써 그는 범죄자의 처벌이나 사회적 상황의 개선을 통한 범죄예방에 치중해 오던 기존 범죄ㆍ사회학 분야 접근방식에서 물리적 환경을 고려한 상황적 범죄예방을 통한 접근방식으로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후로는 건축물이나 도로 등의 시설을 설계할 때 미리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퍼지게 됐다.

더욱 안전한 도시에 살고 싶은 생각과 노력이 우리 사회에 점차 퍼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안전한 도시 속에 살았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거기까지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대지진 같은 천재의 위험으로부터는 완벽하게 벗어나기 힘들지만 최소한 사람이 저지르는 사고만이라도 막아보려는 노력, 그것이 우리 도시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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