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로 태어나 4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나종일씨(뒷줄 오른쪽 첫번째)는 장애를 극복하고 현재 구글의 웹마스터다. 사진은 지난해 크리스마스때 한국을 방문한 그의 양부모님과 가족들의 모습. 뒷줄 왼쪽 첫번째는 자형, 두번째는 친형, 앞줄 오른쪽 끝이 생모, 앞줄 오른쪽 두번째는 누나와 조카.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나주석 기자]"수화는 다른 종류의 언어일 뿐, 청각장애인도 공부하고 스포츠를 즐기며 의미있게 살고 싶은 마음은 일반인과 같아요."
입이 아니라 '손'에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구글의 웹마스터 나종일(남 31)씨의 말이다. 그는 농인으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후 그곳에서 공부하고 성장했다. 2006년부터 버지니아와 캘리포니아에 있는 구글 지사와 본사에서 일하다 지난해 6월부터는 구글코리아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의 미국이름은 네이슨 케스터(Nathan Kester). 그는 구글코리아의 웹사이트 내 광고컨텐츠 프로그램과 디자인을 적합하게 연결하고 활성화시키는 총괄책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역삼역 인근 구글코리아에서 그와 그의 말을 대신해 줄 미국수화통역사를 만났다. 그곳에서 만난 나씨의 첫인상은 체크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활달한 젊은이로 보였다. 인터뷰 내내 그는 기자를 바라보다가도 통역사에게 수화로 이야기하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통역사는 다시 기자에게 전달하는 일이 반복됐다.
◆수준급 영어·컴퓨터 전문가 구글서 먼저 입사 제의지난 1981년 인천에서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나 4살 때 미국 농인부부에게 입양된 나씨는 플로리다(Florida)주(州) 잭슨빌(Jacksonville)에 있는 농인학교에서 초,중,고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이후 워싱턴 소재 농인들을 위한 대학인 갈롯데 대학(Gallaudet Universtiy)에 입학했다. 미국의 농인학교들은 수업이나 시험 등 모든 과정을 수화로 진행한다. 리포트 역시 수화를 사용한 영상으로 제출하고 평가를 받는다.
나씨는 그러나 갈롯데 대학을 1년 만에 자퇴했다. 컴퓨터공학분야를 전공으로 해 뉴욕 로체스터 공과대학(RIT)에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아시아계 농학생으로 RIT에 어학연수를 다녀간 사람들은 있어도, 정식으로 졸업한 사람은 나씨가 유일하다. 그는 “영어를 익히고, 컴퓨터공학 분야에서 일하려면 일반인과 함께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이 학교를 다니면서 미국 정부기관의 데이터베이스, 알고리즘 시스템 매니저로 인턴쉽의 기회도 누릴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미국 농인들 중에도 영어를 수준급 이상으로 잘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더구나 컴퓨터 분야 전문가는 더욱 드물다. 꿈을 향한 그의 노력과 인터넷에서 블로그 활동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그는 우연한 기회에 구글로 부터 입사제안을 받게 된다. 당시 나씨는 대학 졸업 후 워싱턴 DC 정부기관에서 1년 동안 웹프로그램 관리자로 일하고 있었다. 이때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구글 본사 직원이 나씨의 능력을 알아봐 줬고 입사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2006년 초 우선 계약직으로 구글에 입사했고 그의 성과에 만족한 구글은 1년후 그를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그의 열정과 함께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채용기회를 박탈하지 않았던 구글의 유연함 그리고 미국의 농인복지 시스템이 이룬 결실이었다.
◆“농인인 누나에게 친밀감 느낀다..한국 복지 더 개선됐으면”나씨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때는 지난 2002년 5월말께. 당시 RIT공대 학생이었던 그는 어학 연수차 공부하러온 한국인 친구를 사귀면서 자신에 뿌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나씨는 “친구 덕분에 입양서류를 다시 검토해봤고, 서울의 모 고아원에 연락해보니 농아로 입양된 사례가 흔치 않아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공항에서 부모님과 누나, 형을 만났다. 아버지는 간암으로 나씨가 미국에 돌아간 뒤 두달만에 돌아가셨다. 그는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은 참 다행이었다”고 회고했다.
나씨가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던 2008년이었다. 특히 누나가 조카를 낳았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다고 한다. 그는 “같은 농인으로 누나와 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조카를 보면서도 신기했고 ‘가족이란 게 이런 거구나’싶은,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을 경험했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번이 세번째 한국을 찾은 셈이다. 나씨는 “지난해 구글 코리아에 웹마스터 자리가 공석이어서 1년간 근무를 요청했다"면서 “살아오면서 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고 나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생활을 꿈꿔왔었는데 이를 회사가 잘 받아들여줬다. 특히 숙식이며 타이피스트, 수화통역사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아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쉬는 날에는 누나가 사는 부산과 어머니가 계신 인천을 오가면서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농인으로 생활하는 게 미국과 한국이 어떻게 다른가란 기자의 질문에 그는 “농인이라고 무지해서 직장생활을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 특히 한국은 농인들에게 수화를 사용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농인의 언어, 그리고 이를 통한 교육이 뒷받침 된다면 충분히 삶을 더 즐겁게, 능력발휘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오는 5월말이면 그는 다시 구글 본사로 돌아간다. 또한 모교인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강연을 하기로 했다. 농학생들에게 큰 귀감이자 롤모델로 인정받아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오진희 기자 valere@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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