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황용희 강승훈기자]연기자겸 교수, CEO 송승환이 최근 뮤지컬협회이사장에 올랐다. 성신여대교수로 '난타'제작자로, 또 한국 뮤지컬협회장으로 살아가는 송승환. 과연 그가 꿈꾸는 세계는 어떤 것일까?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3색인생' 송승환을 스포츠투데이가 살짝 들여다 봤다. "나는 바쁠 때 더욱 빛이 난다"는 그의 '3색삶'을 들어왔다.(편집자주)
▲연기자 송승환"배우는 천직입니다. 물론 뮤지컬 사업이나 후학을 가르치면서도 연기는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뮤지컬협회이사장이 되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최근 뮤지컬협회이사장이 된 송승환이 즘 큰 고민에 빠졌다. 예술인들이 기본적인 최소 생활을 보장받기위해 법안 마련이나 제도 정비에 신경쓰기 위해서다 .모두들 도와주셔야 해요.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세요. 그의 이같은 생각의 근간은 오래된 연기생활에 따른 것이다.
그는 어떤 작품이더라도 캐릭터만 확실하다면 바로 출연을 결심한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다. 남들이 말하는 조연이나 감초 같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만 남길 수 있다면 단 5분만 출연해도 만족했다. 이는 송승환이 데뷔 초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다. 지금도 그는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난 항상 바쁘게 지내왔던 것 같아요. 항상 4-5가지 일을 해왔죠. 한창 인기 있을 때는 연극, 드라마, 영화, MC, DJ 등을 해왔어요. 지금도 PMC대표로 있고, 성신여대 학장도 하고, 드라마와 연극도 하니까. 지금도 4가지는 하고 있네요. 물론 제가 생각해도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즐거우니까, 또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진행하는 것도 좋으니까 그렇게 4-5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중에 연기가 제일 중요하죠. 연기는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에요"
송승환에게 연극 '에쿠우스'는 인생의 지표가 됐던 작품이다. 대학 때 강태기가 열연한 '에쿠우스'를 보고 연기에 매료 당한 그는 늘 이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던 중 1981년 그는 '에쿠우스'의 주인공 앨런 역을 맡았다. 꿈이 이뤄진 것.
이후 그는 2009년에도 '에쿠우스' 작품에 참여했다. 비록 이 때 그가 맡은 배역은 앨런이 아닌 해설자인 다이사트 박사였지만, 그 배역도 상당히 매력적인 역할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가 표현한 다이사트 박사는 '에쿠우스'를 더욱 긴장감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줬다.
오는 상반기에 '난타' 일본(3월), 중국(4월) 투어가 계획되어 있다. 3월부터는 정식으로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문화예술대학장으로의 업무가 시작된다. 최근에는 뮤지컬협회이사장으로 선출돼 잠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와중에 연극과 드라마 출연도 확정했다. 아무리 바빠도 연기하는 것은 배우로서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송승환은 오는 4월 12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갈매기'에 출연한다. 최근 새롭게 단장한 명동예술극장은 그가 43년 전 연극 '학마을 사람들'에 출연했을 때 섰던 그 무대다.
"1968년도 연극 '학마을 사람들'로 데뷔할 때 연출을 이진순 선생님이 맡았어요. 이진순 선생님은 이해랑 선생님과 쌍벽을 이루는 한국 연극계의 거목이시죠. 제가 이번에 이진순 선생님이 작고하기 전에 마지막 작품인 '갈매기'에 출연해요. 제가 처음 연극으로 데뷔할 때의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진순 선생님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갈매기'에 출연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죠"
4월에는 황정음 김래원 남궁연 등이 출연하는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도 합류한다. 또, 향후 기회가 된다면 계속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교육자 송승환.
송승환은 연구하고 노력하는 학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를 전공한 그는 공부보다는 연기의 뜻을 두고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다. 대학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지만, 학내 연극 동아리 활동은 계속했다. 이후 그는 '76 소극장 단원'으로도 활동했다.
학내 연극반에서 그는 이미 스타였다. '에쿠우스''작은 사랑의 멜로디' 등의 공연에서 그는 주연을 따냈다. 물론 흥행에서도 성공했다. '작은 사랑의 멜로디'는 지방 순회 공연을 다닐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 그는 '젊음의 행진''가요톱10''장학퀴즈''한밤의 데이트' 등의 프로그램의 MC를 맡았다. 방송 3사를 통틀어 송승환처럼 종횡무진 활약한 연예인은 드물었다. 최고 절정의 인기를 누릴 때 그는 돌연 미국행을 결심한다. 그 이유는 뮤지컬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진 공연들을 감상했다. 뮤지컬 이론 뿐만 아니라 실기도 공부했다.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과 경험이 녹아, 뮤지컬 '난타'는 탄생될 수 있었다.
"1997년 시작된 '난타'는 지난 1월 누적관객이 600만명을 돌파했어요. 지난해 관객 80만명을 동원하면서 매출액도 200억원이 넘었고, 한국을 방문한 800만명의 외국인 중 100만명이 '난타'를 봤다고 하니까 정말 '난타'는 대단한 것 같아요. 앞으로 일본 중국 공연도 계획되어 있으니까. '난타'를 글로벌한 공연으로 만들려고 준비중입니다. '난타'는 기획 마케팅 문화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공연이에요. 만약 제가 공부하지 않았다면 '난타'를 만들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송승환은 2002년부터 문화산업포럼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이 포럼에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 CJ 전 대표였던 이강복 현 동국대 교수, 경북대학교 이장호 교수 등이 활동하고 있다.
송승환의 일련된 노력이 업계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그는 2005년 명지대학교 뮤지컬 공연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뮤지컬 학과가 처음 신설됐는데, 그 때 들어온 신입생이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이었어요.(하하) 뮤지컬 학과가 생기면서 학생들에게 뮤지컬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줬어요. 그런 과정에서 저도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고요. 공부는 끝이 없어요. 늘 공부해야되고, 실천해야되요."
송승환은 명지대에 이어 지난 해 9월 성신여자대학교 융합문화예술대학 학장으로 임명됐다.
"저희 대학은 문화와 예술이 융합된다는게 큰 의미가 있어요. 갈수록 사회는 다재다능한 인재를 선호하잖아요. 하지만 대학에서는 그런 것을 뒷받침하지 못했죠. 예전에는 무용과에 들어가면 4년내내 무용만 하잖아요. 융합문화예술대학에서는 무용과에 진학해도 음악 공부도 할 수 있고, 연기도 할수 있고 문화 경영도 배울 수 있어요. 벽을 허물었죠. 그런게 재미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융합문화예술대학에는 문화예술 경영, 미디어영상 연기학과, 현대실용음악학과, 무용예술학과, 메이크업 디자인학과 등이 신설됐다.
난타 공연 포스터
▲CEO 송승환.
송승환은 연기자이자, 교육자이자, 또 사업가다.
그가 운영하는 공연전문브랜드이자 엔터테인먼트 사업체인 PMC는 이제 국내 최고의 엔터브랜드가 됐다.
그는 척박한 국내공연문화를 PMC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윤택하게 만들어갔다.
이제는 글로벌 공연이 된 '난타'를 앞세워 한국의 구석구석에 상설 공연장을 세워나가고 있다. 현재 그가 운영하고 있는 공연장은 모두 10곳. 난타가 4군데(서울 3곳, 제주 1곳)이고, 어린이 전용 난타극장이 2개다. 이들 6개 공연장은 모두 상설공연장으로 주로 '난타'라는 콘텐츠를 활용, 전 국민을 공연팬으로 만들어가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4곳에서는 또 다른 공연이 올려져있다.
바로 무지컬 '금발이 너무해'가 코엑스에 위치한 공연장 '아티움'에서 열리고 있고 '뮤직인 마이 하트'가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밀가루 체험전인 '가루야 가루야'가 서울 대학로에서 절찬리에 공연되고 있다. 한마디로 PMC는 '공연 콘텐츠 공화국'이 된 것이다.
PMC는 지난 96년 12월 휘문고 동기동창인 이광호씨와 함께 설립했다. 충남방적 대표이사인 이씨는 겸손하면서도 매사에 철두철미한 사업가로 창의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송승환과는 너무나 잘 맞았다. 그들은 서로 업무 영역을 나눴다. 송승환이 주로 크리에이티브를 맡아, 콘텐츠를 다듬었다면 이씨는 회사 전반의 운영과 재정을 맡았다.
그들이 조합은 15년간 계속되고 있다. '난타'라는 콘텐츠를 만들어 영국 에던버러에 가서 극적인 성공을 거뒀고, 미국 브로드웨이 까지 그 성가를 높였다. 한마디로 최고의 한류콘텐츠를 만들어낸 것이다. '넌버블 공연'이 갖고 있는 무국적, 무경계의 장점을 정확히 체득한 두사람의 작품인 것이다. 물론 영화에도 손을 댔다. '굿세어라 금순아'가 바로 그것.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멋진 흥행을 기대해보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이 송승환의 말이다.
현재는 공연 관련 사업과 함께, 이벤트, 온라인 티켓 마케팅 등 다양한 사업에서 성가를 높여가고 있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3∼4월의 또 다른 '희망'을 피력했다.
3월에 도쿄,오사카 난타 공연과 4월 중국 난타투어가 절찬리에 마감되는 것이었다. 일본 공연은 이미 표가 매진돼 '절반의 성공'은 예약한 상태.
"일본 중국은 시작에 불과하죠. 유럽과 미주를 다시 한번 놀래키는 다양한 경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4월 중국 투어는 이번 투어의 백미가 될 것입니다. 높은 것을 탐하지 않으면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듯이, 미국 중국 등 거대대륙을 우리 '난타'가 휩쓸고 가는 날이 내가 꿈꾸는 최고의 사업이 될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시작한 '15년간의 꿈' PMC가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그 희망의 멋진 조타수가 바로 송승환인 셈이다. "이제 나아가는 일만 남았어요. 힘은 들지만 그대로 끝까지 나아갈 겁니다,"
'희망 CEO' 송승환,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꿈꿔본다.
스포츠투데이 황용희 기자 hee21@
사진 이기범 기자 metro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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