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박정희 서거 직후 주한미국 철수 '촉각'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우리 정부는 미국 의회와 카터 행정부가 주한민국 철수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통상부가 21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0년 1월 10일 박동진 당시 외무부 장관은 미 행정부가 한반도 정세에 관한 비밀 보고서를 각각 상·하원 외교위에 제출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보고서 내용을 입수·보고하라"고 김용식 당시 주미대사에게 지시했다. 보고서는 1979년말 미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주한 미군 철수에 관한 보고서'로, 1980년 중 1526명의 지상 지원병력을 철수하고 2개 대전차미사일(TOW) 중대를 해체할 예정이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미 행정부는 이 정도 주한미군을 철수해도 한반도 군사균형을 유지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보았지만, 1981년 이후 철군 계획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해 2월6일 주미대사는 미 하원 군사위원회 비공개 청문회 내용을 파악해 외무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미 하원은 태평양 지역 군사정세에 관한 청문회에 존 위컴(Wickham) 주한미군사령관을 불러 '주한미군이 철수했을 경우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물었고, 위컴 사령관은 "상당수의 전투병력이 철수된다면 북한에 의한 공격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2월12일 미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제4차 '한반도 보고서'도 "철군 중지 결정이 대한(對韓) 안보 공약 유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유리한 전략적 위치 안정을 가장 잘 보장할 것"이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같은 달 18일 미 상원 군사위도 "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둔 미군 8만6000명을 감축하기로 계획했지만, 남북한의 군사적 불균형을 우려해 주한미군은 현 수준 이하로 감축해서 안 된다"는 보고서를 냈다.

1980년 9월 6일엔 마이어(Meyer) 미 육군 참모총장이 "유럽 주둔 미 육군 병력 6000명과 주한미군 병력 900명을 감축해 본토에 주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가 다시 긴장할 만한 소식이었으나 미국 측은 "주한미국 철수와는 무관하며 감축 대상은 전투 요원이 아닌 하사관급 지원병력"이라고 해명했다.

이 문제는 그해 9월 새로 취임힌 노신영 외무부 장관이 12월 20일 주미대사에게 단바(丹波) 일본 외무성 안전보장과장의 말을 알리며 일단락됐다. 카터를 누르고 미국 40대 대통령이 된 레이건 정권측 방위정책을 듣고 온 단바 과장은 "주한 미군 철수문제는 현 미 정부에서도 동결됐지만 새 행정부 인사들은 이를 완전히 폐기된 문제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지연진 기자 g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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