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에서]재정부 예산실엔 싱글이 많다?

"퇴근 늦고 격무 시달려 단장할 여유 없어"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국회의 2011년도 예산안 심의가 한창이다. 정부는 지난 9월 말 올해보다 20조1000억원(6.9%) 늘어난 312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당정은 이후 306조원 수준으로 내년도 예산을 확정하기로 했다. 4대강·복지예산 등을 두고 여야는 평행선을 긋고 있다. 올해도 법정 기한 내에 예산안이 처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예산을 두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공방 속에 오버랩되는 '예산실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시간은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공개한 지난 9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정부 로비에서 만난 예산실 A국장의 눈은 퀭하게 꺼져 있었다. "추석인데… 자식 도리도 못했네요." A국장은 예산안 발표 한 주 전이던 지난 추석, 결국 고향집에 다녀오는 걸 포기했다. 밤을 새워 작업을 해도 예산안 최종 마감 시간에 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B국장도 "추석 당일 간신히 어머니 얼굴만 뵙고 왔다"고 했다. C과장은 "다 행복하게 살자고 일도 하는 것"이라며 배짱좋게 '하루'를 고향집에서 보내고 새벽 운전을 해 상경했다.

과장급 이상 간부들의 형편이 이렇다보니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관들은 예산 시즌에 다른 생각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J사무관은 "남들은 재정부 사무관이 됐다고 부러워하고, 학교 친구들이 종종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도 하지만 좀체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푸념했다. 밤을 새워가며 예산안을 짜고, 심의하는 게 일쑤이다보니 '민간인'의 시간에 맞춰 이성을 만날 여가가 없다는 얘기였다. H국장은 "가정을 꾸려야 할 나이의 젊은 사무관들이 초췌한 얼굴로 밤샘 작업을 하면서 빵을 씹고 있는 걸 보면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예산실엔 유독 싱글 남녀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면서 시간도 맞출 수 있는 예산실 커플은 어떨까. 이런 제안에 예산실 사무관들은 손사래를 쳤다. D사무관은 말했다. "만날 밤을 새우면서 여름엔 슬리퍼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까치집이 된 머리를 보여주게 돼요. 책상엔 먹다 남긴 컵라면에 봉지 김치 국물이 흘러 있을 때가 많지요... 도무지 서로에게 흑심이 생길 수가 없는 환경이에요."

일일이 조사하기 전엔 약 1000여명이 어울려 일하는 재정부에서 유독 예산실에만 싱글이 많은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예산실에 싱글이 많다는 루머(?)는 어찌보면 격무에 시달리는 예산실의 고충을 압축하는 탄성(嘆聲 )일지도 모르겠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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