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FTA 정신 훼손하는 미국의 압박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점 하나도 고칠 수 없다'던 기존 협정문을 수정하게 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미국이 자동차 부문에서 강도높은 압박을 가하고 있고, 정부가 일부 수용할 뜻을 비쳤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의 일방적인 압박에 따른 불평등한 협정문 수정은 있을 수 없으며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이는 상호이익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호혜의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FTA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설사 협정문 수정이 불가피하더라도 상호균형의 잣대에 맞춰 우리 측의 요구를 함께 반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주장은 한국 자동차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발동 규정을 두자는 제안과 이미 합의한 한국차에 대한 관세철폐 시점을 연기하자는 요구가 핵심이다. 협정문을 수정하고, 국회 비준 절차도 새로 밟아야 하는 내용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엊그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그동안의 한ㆍ미 FTA 협상 결과를 설명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양국 실무협상이 왜 결렬됐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3년도 더 지난 협정문을 이제와서 고쳐 쓰자는 미국의 주장은 일방적이며 지나치다. 김 본부장이 수차례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칠 수 없다"고 공언해온 사실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요구에 끌려 협정문을 수정하는 사태가 온다면 국민이 과연 동의하겠으며, 국회 비준은 이뤄지겠는가.

김 본부장은 "미국뿐 아니라 우리도 세이프가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없는 얘기다. 수출 증가세가 높은 한국 차는 언제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한국시장의 소비 구조를 볼 때 미국차가 대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이 양보를 주장하면 우리도 상응한 양보를 받아내야 하는 게 협상의 기본이다. 미국이 쇠고기문제도 제기했으나 거절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당연하다. 쇠고기는 FTA와 별개의 문제다. 쇠고기를 논의하지 않았다 해서 다른 분야에서의 일방적인 양보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미국이 자동차를 들고 나온다면 우리는 농축산물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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