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총리 후보자에 쏠린 눈

한국 낭자들은 정말 강심장이다.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 한일 결승전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그 생각을 했다. 다소 밀리는 기량을 뒷심으로 이겨내며, 살떨리는 승부차기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쥔 그대들이야말로 진정한 글로벌 챔피언이다.

최덕주 감독의 리더십 또한 숨은 진주처럼 값지다. 최 감독은 승부차기에 앞서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있게 차라.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선수들의 기를 살려줬다. 한국인 특유의 뒷심과 감성리더십을 제대로 버무리면 이처럼 '작품'이 탄생한다.한국축구가 128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우승했다며 온국민이 환호하는 그 순간, 한 남자는 모의청문회에 임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청문회 준비에 일요일인 26일에도 '서바이벌 리허설'에 여념이 없는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를 떠올려본다.

양쪽 눈의 시력 차로 인한 부동시(不同視) 판정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데 대한 병역기피 의혹뿐 아니라 딸 취업 특혜 의혹 등 여러 사안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제2의 김태호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 국민들 사이에서는 청문회와 관련해 청와대가 제시한 '고위공직 예비후보자의 사전 질문서' 200문항 통과 테스트에 대한 얘기들이 무성하다. 최근 만난 모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재미삼아 200개 문항을 놓고 자기검열을 해봤다"면서 "걸릴 것은 별로 없었으나 과속운전 벌칙금 등 발목을 잡는 게 몇 개 있어 장관이 되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을 접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고위공무원단에 소속된 한 공무원은 "꼼꼼히 따져보니 위장전입과 음주운전 항목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렇듯 200문항의 관문을 가볍게 통과했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황식 총리 후보자는 오는 29~30일 이틀간의 청문회 기간 중 200문항에 대한 자기검증뿐 아니라 자신이 국무총리 적임자임을 국민을 상대로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국민들은 청문회장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주장이나 목소리보다 김 후보자의 답변이나 태도 등을 더욱 눈여겨볼 것이다. '인간 김황식'에 대한 국민여론의 향배에 따라 총리 인준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는 뜻이다. 김 후보자가 진실을 말하되 주눅들지 말고 당당하게 소신을 편다면 청문회 관문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국 뉴욕에서는 제65차 유엔총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자리는 썰렁해보인다. 총리와 외교통상부장관의 공석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신각수 외교부 장관 직무대행이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등 분전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듯싶다. 대통령 총리 등 각국의 수뇌급들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 유엔총회장을 누비는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더 그렇다.

반기문 현직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총성없는 전쟁터인 글로벌 무대에서 외교수장이 장기 공석 중이라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일종의 직무유기다. 장관 제청과 직결된 총리 인준이 삐걱대는 바람에 부작용과 누수현상이 만만치 않은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30년대 일본 수상을 지낸 이누가이 외상의 일화가 떠오른다. 한쪽 눈이 없는 이누가이 외상이 중의원에서 연설할 때 한 야당의원이 "당신은 한쪽 눈밖에 없는데 어떻게 복잡한 국제정세 돌아가는 것을 다 볼 수 있느냐"라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퍼부었다. 이누가이 외상은 즉시 "의원님께서는 일목요연(一目瞭然)이라는 말도 모르십니까"라고 되받아쳐 오히려 상대방을 무안케했다고 한다. 적어도 총리 자리에 오르려면 이 정도 뒷심과 배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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