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과 거꾸로 가는 전세금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자녀 교육 때문에 강남으로 이사가기로 마음먹은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모씨는 최근 송파구 잠실일대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고 실망했다. 이 지역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2년차 전세 재계약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가격이 떨어졌을 것이란 기대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국민은행 시세 기준으로 109㎡형 전세금이 3억6000만~3억8000만원대였지만 막상 부동산 중개업소를 나온 물건은 4억원을 넘어섰다. 그는 "강남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전세금은 왜 오르는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최근 집값은 떨어지는데 전세금은 계속 오르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통상 전세금이 오르면 집값이 따라 올랐던 추세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다. 특히 올 하반기는 서울 및 수도권에 대규모 입주 물량이 예정돼 있어 집값은 물론 전세금도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25일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8월 셋째주 서울 지역 전세는 전주보다 0.01% 올랐다. 신도시(0.07%)와 경기(0.04%), 인천(0.03%) 등의 전세 시장도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서울(매매가 변동률 -0.04%)을 비롯한 신도시(-0.19%) 경기(-0.03%) 인천(-0.03%) 등의 집값은 약세를 이어갔다.

집값 약세 속에 전세금이 오르면서 지난달 38.58%였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39%로 높아졌다. 이는 2009년 1월 34.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지역 아파트 전세가율은 2006년 1월 40.8%로 정점을 찍은 후 같은해 12월 34.8%까지 떨어졌다. 이 후 2009년 10월까지 34~35%대에 머물렀다.

올들어선 매매가 하락에도 전세금이 계속 오르면서 전세가율 상승 추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비수기인 이달 전세가율도 전달 38.6%보다 0.4%포인트 더 올랐다. 특히 올해 집값 하락세가 두드러졌던 송파·양천·강남 등의 전세가율이 가파르게 올라 눈길을 끌었다. 송파구의 현재 전세가율은 35.47%로, 금융위기 직전 29.05%보다 6.41%포인트나 뛰었다. 전셋금이 지속적으로 오르면 매매가가 동반 상승했던 것과는 달리 집값 하락에도 전세금이 뛰는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 올들어 강해진 이유는 뭘까.

최대 원인은 주택 시장 장기 불황에 있다. 집값 하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금리까지 오르자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보다 전세로 눌러앉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매매 실수요자들이 사라진 탓이다. 결혼 등의 신규 전세 수요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도 전세 시장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전세시장이 강세를 보이는 서울지역의 공급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도 전세 시장 불안 요소다. 특히 인기지역인 강남권에 올해 입주물량이 부족한 상태인데다 강북권은 재개발 등으로 이주 수요까지 겹쳐있는 전세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이밖에 집값의 기대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반대급부로 전세금을 많이 받으려는 수요가 늘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 팀장은 "일부 경기도 파주 일산 등에 입주 물량이 늘면서 전세가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주 성향이 강한 전세 성격상 서울 거주자가 수도권으론 이사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서울 입주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세금 강세는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재개발 관련 이주수요 대비도 잘 안된 편"이라며 "전세금 강세 현상은 단기간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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