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고객 강요로 쓴 손실보장 각서, 효력 없다"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은행 직원이 고객에게 투자손실을 보장해주겠다는 각서를 써줬더라도 그 각서를 고객 강요에 의해 썼다면 은행 측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3부(여상훈 부장판사)는 이모씨가 "은행이 고객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아 손해를 입었다"며 A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A은행은 이씨에게 39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는 은행 직원 민모씨가 손실 보장 각서를 써주면서 펀드 환매를 연기하게끔 했고 민씨의 이 같은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나, 민씨가 이씨에게 써준 각서는 자의에 의해 작성한 것이 아니라 펀드가입으로 손해를 본 이씨의 항의와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나아가 민씨가 각서를 써주면서 펀드 환매를 못하게 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도 없으므로 각서와 관련한 은행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더 따져 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손실 보장 각서와 관련한 은행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투자경험이 없는 투자자에게 투자위험성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등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은 일부 인정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은행 측은 투자경험이 없고 67세 고령인데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이씨에게 투자위험성 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면서 "이씨가 가입한 펀드는 그 구조가 복잡해 투자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높은 투자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장기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임에도 은행 측은 이씨에게 해당 펀드 가입을 권유하면서 투자위험에 대한 경고보다는 성장성 내지 안선성을 강조했다"고 했다. 다만 "이씨가 민씨에게서 손실 보장 각서를 받을 때는 이씨도 이미 이 펀드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알았던 점, 이씨가 상품의 내용ㆍ투자위험성 등에 관한 내용을 사전에 정확히 파악하고 신중히 검토한 뒤 투자를 해야 했음에도 신중을 기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면서 은행 측의 배상책임을 40%로 제한했다.

이씨는 2007년 12월 민씨 권유에 따라 8억원을 펀드에 투자했다가 펀드 평가금액이 계속 하락하자 이듬해 9월 환매를 신청, 4억9000여만원을 돌려받았고, A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금 3억여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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