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6.25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지난 현재 북한은 김일성주석이 약속한 '이밥에 고깃국'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오늘도 끼니해결을 삶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후 자립경제와 자력갱생을 외쳐왔지만 현재는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구호경제'로 전락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력은 적어도 1970년대 초반까지는 남한을 앞섰다는 게 중론이다. 북한은 일제 때 북쪽에 집중된 산업시설을 바탕으로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를 한 결과 1960년대는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지만 '중공업을 우선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경제건설노선을 제시하고 개인농과 개인상공업의 협동화라는 사회주의 기초건설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로서 제법 면모를 갖추기도 했다. 1958년 북한의 경제는 옛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지원과 '천리마운동'을 통해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시킬 정도였다. 이승만 대통령 치하의 남한에 비해 경제력 우위를 선점하면서 북한의 초기 경제건설을 성공하는 듯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건설의 기세는 1960년대 들어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1965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소련과 중국의 대립, 옛 소련의 수정주의와 대북원조 등 대외정세가 긴장되자 북한은 경제적 자립과 국방력 증강을 선택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가 미국 등 서방과의 경제 안보협력관계 강화를 통해 고속 경제성장의 발판을 만드는 동안 북한은 1967~69년 전체 예산의 30%이상을 국방비에 지출할 정도로 군비 지출을 확대했다. 북한경제가 고도성장을 멈추고 1차 7개년 계획을 3년이나 연장할 정도로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도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80년대 말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시장경제로 전환한 중국과의 관계악화 등으로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은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1993년 제6기 21차 당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처음으로 경제계획의 미달을 공개 시인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90년 중반에는 유례없는 자연재해로 수백만명이 아사하고 탈북자가 급증했다.
그러나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금강산관광이 본격화하고 개성공단이 추진되는 등 남북간 경협확대와 남한의 대북지원에 힘입어 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 1.3%, 2001년 3.7%, 2002년 1.2%, 2003년 1.8%, 2004년 2.2%, 2005년 3.8%등으로 미약하나마 성장세로 돌아섰다. 1999년에는 북한 대외무역에서 북중무역과 남북경협을 합한 비중은 49.4%였지만 2008년에는 82%로 급증했다. 그만큼 남한과 중국에 교류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북한은 다시한번 돌파구를 마련했다. 일명 '7.1경제관리개선조치'다. 임금 및 물가를 현실화하고 배급제의 단계적축소, 기업의 자율권확대 등을 통해 음성적으로 퍼진 시장경제요소를 조금이나마 양성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체제안전에 대한 걱정때문에 시장통제와 단속으로 회귀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북한은 미국과 핵문제 대립속에 장거리미사일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북한 경제는 성장률이 곤두박질 쳤다. 경제성장률은 2006년 -1.1%, 2007년 -2.3%로 다시 뒷걸음친다.
북한에게 가장 심각한 것은 식량공급이다. 북한의 식량난의 원인은 1970년대 중반 도입됐던 이른바 주체농업에 있다. 주체농업은 북한식 농정의 실패, 사회주의적 집단영농 생산방식에 따른 농업생산력의 침체 등을 안겨주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실패가 점쳐졌다. 1980년대 북한의 식량생산량은 평균 415만t 정도에 불과했다. 정량배급기준으로 평균 200여만t 정도가 부족했다. 1995~1997년 기간에도 식량생산량은 연 354만t에 불과해 식량부족량도 연 164만t에 이르렀다.
북한은 북중국경을 통한 식량 밀무역과 전국적 규모로 발달한 장마당 등을 통해 식량난을 겨우 겨우 이겨내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북한의 경제를 더 악화시킨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진한 각종 경제정책이다. 김 위원장이 주도한 '70일 전투',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 '속도전' 등 다양한 돌격대식 증산 캠페인은 설비의 혹사와 원가 무시, 자재와 인력의 낭비 같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후계체제 공고화, 남북간 체제 경쟁 등을 의식한 주체사상탑 건립 등은 북한의 경제시스템의 뒷걸음질을 재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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