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재정건전성 강화” 발언 왜 나왔나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이명박 대통령이 9일 열린 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건전성 강화를 거듭 강조하면서, 향후 정부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재정건전성은 그동안 금융위기를 맞아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버려야 했던 카드였다. 당연히 적자 재정은 경제회복 시기에 원상복구해야 할 최대 과제인 셈이며 출구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등 금융당국은 그동안 재전건전성 회복으로 대표되는 출구전략에 대해 아직 이르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이번 재정전략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이 같은 기존 입장을 무색하는 발언들을 쏟아 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우리가 세계에서 비교적 재정관리를 잘해왔다고 생각하고 재정 면에서 아직 건강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지금부터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적절한 재정지출을 해야 하지만 재정 건전성도 관심을 둬야 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건강을 회복한 상태인 만큼 적절한 재정지출을 하면서도 건전성을 위한 고삐도 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이 같은 생각의 전환은 최근 불거지기 시작한 그리스발 재정위기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은 물론 미국,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머징 마켓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내년 예산은 물론 2014년까지 중기 재정전략의 방향은 건전성 회복에 맞춰지는 분위기다. 재정부문 출구전략이 본격 가동된 것으로 풀이된다.

◆ ‘그리스’재정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라!

사실 올해 들어와 정부는 재정건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며 자신만만해 하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국제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외화유동성 위기 해소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 미국, 일본과 체결한 통화스왑이 지난달 모두 종료했다. 정부는 외환 보유고가 넉넉하고, 경제도 회복단계에 접어든 만큼, 위기상황에서 체결한 통화스왑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는 지난해 17조6000억원 적자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7%였다. 애초 예상했던 -2.1%보다 괜찮은 성적이며 미국(-11.4%), 영국(-11.2%) 등 선진국보다 건전한 편이다.

국가채무도 359조6000억원으로 GDP 대비 33.8% 수준이다. 올해 전망치도 애초에는 407조1000억원이었지만 지난해말 기준 채무가 전망보다 6조4000억원 줄어든 점 등을 감안할 때 390조원대로 축소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래도 여전히 불안감을 남는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경제규모에 비해 많은 대외채무를 지고 있어 급격한 자본유출입이 나타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GDP대비 대외채무비중은 43%로 스위스나 프랑스, 독일 등 보다는 낮지만 우리나라처럼 비국제결제통화국가에 속한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다.

특히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했던 그리스 등 일부 유럽국가의 경우 재정건전화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 신뢰회복에 실패 하면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면서 재정건전성 회복 노력을 더 강화할 필요성 있다는 공감대가 청와대에서 형성된 것이다.

아울러 저출산·고령화, 통일비용 등 중장기적 재정위험 고려시 외부충격에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에서는 또 다른 위기 발생이전에 재정건전성을 조기에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재정건전성과 함께 재정지출효율도


문제는 우리 경제 현실에서 재정건전성만 강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출 통제 위주의 재정건전화 노력만 강조할 경우 자칫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미래대비 투자가 소홀해져서 성장잠재력이 훼손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오히려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

이 대통령도 이날 회의에서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한 개혁 필요성도 강조했다. R&D 예산을 향후 GDP 대비 5%까지 올릴 계획이다. 물론 어떻게 효과적으로 쓸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일률적인 지출 축소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미래대비 투자를 강화해 경제성장을 통한 재정수입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특히, 모든 것을 다 잘 하려고 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서 잘 할 수 있는 분야 및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재정역량을 집중해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데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는 재정부문의 출구전략이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우선 경제위기 과정에서 도입된 한시사업들을 축소하고 지난해에 이어 비과세.감면 조치에 대한 정비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향후 지출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복지, R&D 분야와 관련해서는 일자리 제공을 통한 생산적 복지 시스템 구축, 나눠먹기식 R&D투자 지양 등 낭비적 요소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가 목표로 잡는 재정 균형 시점도 변동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는 위기 과정에서 재정균형 시기를 애초 목표보다 1~2년 늦춘 2013~2014년으로 잡았지만 변경도 점쳐지고 있다.

현오석 KDI원장은 “그리스 등의 사례를 볼 때 앞으로 경제정책의 초점은 재정건전성에 맞출 필요가 있다”며 “고령화 등에 따른 재정위험을 미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과 같이 우리나라도 30~40년 단위의 장기 재정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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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기자 bob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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