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숭 썬 봄 도다리가 두텁게 들어간 회덮밥.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런데 그 회덮밥에 초장이 빠져있다면? 어느새 입에 돌던 군침은 싹 사라지고 입맛만 다시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 맛있는 회덮밥을 빨리 먹겠다는 요량으로 서두르다가 초장을 너무 많이 넣어 버리면 봄 도다리의 감칠 맛은 못 느끼고 맵고 짠 초장밥을 먹게돼 버리고 만다. 결국 치우침이나 과부족이 없는 중용의 지혜가 회덮밥 한 그릇 먹는데도 필요한 것이다.
대학에는 교무처장, 학생처장처럼 '처장'이라는 직급이 있다. 기업체의 경우와 견주어 보면 얼추 '본부장'과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교수가 처장직을 수행할 경우 그 보직은 봉사 영역에 속한다. 교수는 잠시 교육, 연구의 본업을 떠나 행정 전문가들인 교직원들과 함께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일을, 그야말로 봉사를 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때 처장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실질적으로 처를 운영해 가는 교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쓸데없는 간섭과 통제는 최대한 자제하되 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 올 수 있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자극을 주는 역할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결국 '어느 정도 넣어야 맛있는 회덮밥이 되는가' 하는 초장의 역할과 진배없다.
대학에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 해당하는 '총장'이라는 직급도 있다. CEO나 총장 모두 자기 조직에 대해 많은 권한을 행사한다.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인디오 부족의 추장에 비할 바가 못된다. 추장은 재산 배분, 생사 여탈 등 그야말로 전권을 지닌 일인 독재자다. 그런 추장도 사람인지라 그 전권 행사에 사적 감정이 개입하기도, 또 실수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족민들은 그를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 요샛말로 막강한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막강한 추장의 리더십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 추장 왈 "내가 갖는 특권 중 최대의 특권은 전쟁터에서 가장 앞장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추장의 모든 권한의 근저에는 자기 목숨을 바친 희생, 솔선수범이 있었던 것이다.리더십이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힘. 리더가 사람을 움직이려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잭 웰치 전 GE 회장은 "리더가 1000명의 직원을 통솔할 경우 1000명 각 개인과 대화하고 설득할 각오가 돼 있어야만 한다. 열 번 말하지 않은 것은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고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유명 CEO들도 요즘 트위터를 통해 고객, 직원들과 직접 대화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화를 통해 리더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1880년대 말 전화가 처음 선보였을 때,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80년대 말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인류의 숙원인 의사 소통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리라 믿었다.(실제 지금 각광받고 있는 스마트폰, 트위터, 아이패드는 그 당시 전화, 인터넷이 준 충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사람들의 의사 소통에 대한 목마름은 더욱 더 심해져 왔다.
싸움이 벌어졌을 때 부족민들을 모아놓고 희생에 대해 천번, 만번 말하는 제사장과 아무 말없이 적군을 향해 말을 올라타는 추장을 상상해 보라. 초장(草醬)같은 처장(處長), 추장(酋長)다운 총장(總長). 이들을 바라는 것이 어찌 대학만이랴.
오늘 점심은 맛있는 회덮밥을 주문해 초장을 적당히 넣어 썩썩 비비면서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고 명령하자. 인디오 추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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