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여체의 신비'깨닫던 그시절오락실

80, 90 게임시대를 풍미한 아케이드 산업. 과거의 추억 속으로 ①

한 소년이 골목길을 휘저으며 달음박질한다. 그러다 지쳤는지 잠시 걷는다. 이내 달린다. 상기된 얼굴하며 뭔가 기대에 가득 찬 모양새로 문을 열자 그 안에서는 현란한 전자음과 함께 신세계가 펼쳐졌다.

칙칙한 분위기하며 요란스러운 빛들의 혼재, 오락실이다. 분명 소년의 동네에도 오락실이 있었다. 왜 굳이 소년은 멀리 있는 다른 동네까지 찾아갔을까. 부모님에게 걸리면 혼날까봐? 그 소년은 '신종오락'이 다른 동네 오락실에 입고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먼 길을 찾아간 것이다. 신종게임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먼 길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 소년은 어느새 이립(而立)의 나이를 부쩍 넘긴 그저 평범한 아저씨가 돼있다.

갤러그(남코, 1981).

갤러그(남코,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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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오락, 최신종.
80년대와 90년대의 오락실 문화를 접해본 이들에게는 친숙한 단어들이다. 다이얼식 TV의 화면이 고르지 않으면 외계인과 교신이라도 시도하는 마냥 안테나를 들고 방안을 누비던 아날로그 시대. 전자장치를 이용한 오락이니 그저 ‘전자오락’일 수밖에 없다. ‘최신종’이라니 얼핏 요즘아이가 들으면 인플루엔자의 통칭으로 알려나. 주로 오락실 유리문에 홍보용으로 사용된 단어인데, 오락실 주인이 신종게임의 이름을 도저히 알 수도 없고 지어내기도 힘들 때 게임 타이틀로 능청스레 사용하기도 했다. 어떤 게임이든 상관없이 새로 나왔으니 최신종일 뿐이다. 오락실 주인은 쿨했다.

지능개발이라는 단어도 오락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던 문구였다. 당시 코찔찔흘리던 나이의 필자였지만 이 단어는 매우 우스꽝스럽게 다가왔다. 이 난장판과 지능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주어진 능력을 얼마나 빨리 파악하고, 변화하는 미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력을 연속적으로 테스트하는 것이 전자오락이다. 게임 초고수들은 가장 적은 동작만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데 익숙하다. 단, 게임으로 지능이 개발된 건지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게임을 잘하는 건지는 미지수다.
황금성(타이토, 1986).

황금성(타이토,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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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돌대가리인데 게임을 잘했다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만큼의 동전을 오락실주인에게 상납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될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게임을 잘하려면 주머니 속 동전의 개수가 좌우한다. 단순 주입식 반복학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원리파악을 못하더라도 죽어라 하면 몸이 알아서 반응하기 때문이다. 게임도 같다. 게임과 공부는 행위에 따른 즐거움 유무로 인한 의욕의 차이일 뿐이다. 이 같은 견해를 바탕으로 공부에 재미를 도입한 '에듀테인먼트'라는 신종 사업영역도 생겨났다.

어수선한 시대상황과 함께 딱히 놀만한 장소는 물론, 유희거리도 부족했던 시기에 때맞춰 등장한 오락실은 당시 청소년들에게는 최적의 일탈 장소였다.

그 무렵 오락실은 만화방과 함께 불량청소년 소굴의 양대산맥을 형성하며 금지된 장소였다. 어떻게 오락실을 처음 가게 된 것인지는 잘 기억나질 않지만 갤러그만 잔뜩 놓여있는 오락실에서 형님들이 열심히 게임을 즐기고 있는 모습만은 뇌리에 남아있다.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조잡한 사운드와 비주얼이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살고 있던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는 매우 적절했다. 옛날 오락실의 이미지하면 으레 ‘뿅뿅’이라는 의성어를 썼다. 초창기 오락실의 히트상품은 갤러그였고 거기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가 총알이 나갈 때의 뿅뿅 소리였기 때문이다.

엑스리온(자레코, 1984).

엑스리온(자레코,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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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그의 대인기에 힘입어 초창기는 슈팅게임의 전성시대였다. 3D슈팅게임의 선두주자인 엑스리온, 애프터버너에 제비우스, 사이드암, 건스모크.. 그야말로 슈팅게임의 폭풍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그와 함께 게임의 발달로 보다 세심한 프로그램이 가능해지자 액션게임들도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여체의 신비'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게 만들었던 황금의성, 몇십년을 우려내고도 아직 10년은 더 우려낼 듯한 슈퍼마리오, 원더보이, 닌자키드, 보글보글 등 그야말로 게임산업의 온갖 아이디어가 넘쳐흐르는 황금시대이기도 했다.

이 무렵 늦게까지 집에 가지 않아 몇 번씩이나 오락실에 찾아온 어머니에게 끌려 나갔던 것은 기억난다. 요즘 PC방에서도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를 찾으러온 어머니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모정만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듯하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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