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돌연 '소심모드'...무슨 일이?

[아시아경제 이현정 기자]생필품 관련 담합에 대해 강력히 응징하겠다며 친서민정책의 '행동대장'으로 나섰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칼 끝이 무뎌진 것일까.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할 것으로 관심을 모아 온 액화석유가스(LPG) 담합 제재 결정이 계속 미뤄지며 다음달로 넘어갈 전망이다. 특히 당초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산정됐던 과징금 1조3000 여 억원 보다 대폭 줄어들 것으로 관측되면서 섣불리 들이댄 칼날에 공정위 스스로 잔뜩 움츠려 들었다는 평가다.

공정위 관계자는 17일 "지난 12일 전원회의에서 LPG 담합 관련 제재가 연기된 후 18일 또는 25일에 2차 전원회의를 열고 추가 심의할 예정이었으나 국회 일정으로 이달 내 결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예산결산소회의와 19일 공정위 예산안 심사 관계로 정호열 공정위원장과 손인옥 부위원장이 참석해야 한다. 내주에도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법안심사 관련 국회일정이 예정돼 있는 등 다음달 초까지 전원회의 일정 잡기가 물리적으로 불가피하다. 사안이 워낙 큰 만큼 다음달 9일 정기국회가 끝난 후 신중히 추가 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공정위의 이같은 결정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담합 사실을 기정사실화 하고 1조원에 이르는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여론의 부담도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오는 21일 정 위원장을 비롯해 국장이상 간부 10 여 명과 출입기자간 친목도모를 위한 산행 일정도 돌연 취소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LPG건 심의 확정 후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심사일정이 연기되면서 불가피하게 취소됐다"며 "위원장님이 LPG 과징금 논란에 적지않은 부담감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LPG업계들은 공정위가 1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라는 소식에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정 위원장은 지난 13일 한 초정 강연에서 "심사보고서 상 심의 결과와 실제 부과되는 과징금 규모는 큰 차이가 있을 것"며 과징금 축소 가능성을 높이자 공정위 잣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한편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대한 불공정행위는 강력 조치하겠다는 공정위 방침의 방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됐던 LPG 관련 제재가 재차 연기되면서 빵, 우유, 휘발유 등 현재 공정위가 진행중인 담합 조사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조사중인 품목과 LPG 과징금 규모는 별개의 문제"라면서도 "과징금 규모가 크게 경감되면 이후 제재를 받은 업계들에게도 영향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현정 기자 hjlee3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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