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의 경제레터] ‘기러기 부부’가 되십시오

세간에 3종류의 아버지 유형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 그리고 독수리 아빠입니다. 며칠 전 이어령 전 장관께서 중앙일보에 연재하는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에 이에 대한 내용이 실렸더군요.

“기러기 아빠는 그래도 이따금 날아가 아내와 아이를 보고 온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아빠는 비행기표 살 돈이 없어 썰렁한 빙산 같은 집에서 혼자 갇혀 사는 펭귄새가 된 것이다. 말만 새지 날 수 없는 펭귄처럼 말만 아빠지 아빠 노릇 못하는 아버지의 출현이다. 그러나 독수리 아빠는 펭귄은 물론이고 기러기 아빠보다도 행복하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어 아무 때나 날아가 떨어져 사는 가족과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아내와 자식이 없기에 높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면서 먹잇감을 사냥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몇 년 후 잘 자라 준 자식과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며 사는 기러기 가족이 3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제 주위에도 기러기 아빠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식하나 잘 키우겠다는 생각에 한국에 홀로 남아 고군분투, 뒷바라지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보니 기업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전자제품 회사마다 자신이 생활하는 모습을 수시로 촬영할 수 있는 웹캠, 음악과 동영상 재생이 가능한 디지털 액자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깨끗한 화질의 화상대화 기기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기기가 발달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가족사진이 아무리 많아도, 화질 좋은 동영상을 보며 시시콜콜 대화를 나눠도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무시할 수 없는 게 잠자리입니다. 정신적인 사랑이 중요하다고 스스로 자위(自慰)를 해보지만 남편의, 부인의 따듯한 손길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가족의 행복이 회사의 생산성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족이 행복해야 자신이 행복하게 느끼고,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껴야 업무도 즐겁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기업들이 직원들의 배우자를 교육시키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런 점에서 국내 기업들도 기러기 아빠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기러기 생활이 불가피하다면 그 삶속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본인 스스로의 노력입니다.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한다든지, 생산적인 그 무엇에 몰두한다든지, 새로운 목표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많고 많은 새 중에서 왜 기러기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기러기가 가을 하늘을 나는 쓸쓸함과 서로 모여서 외로움을 달래는 임지를 갖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기러기는 홀로 되면 평생 재혼을 하지 않고 새끼들을 극진히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산에 불이 나 위기일발에 처했을 때 품에 품은 새끼와 함께 타 죽을지언정 새끼 홀로 내버리고 도망갈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흔히 부부애가 두터운 것을 원앙새에 비유하지만 사실 원앙은 바람둥이고 진짜 절개를 지키며 사랑하는 새는 기러기랍니다.

이 시대의 기러기 아빠와 기러기 엄마들이여! 이왕 ‘기러기’란 수식어가 붙었으니 기러기처럼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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