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구제금융이 임박한 금융기업들이 서둘러 자산매각을 통한 신규자본 확충에 나섰다. 정부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가 간섭을 당하느니 몸집을 줄여서라도 독자 생존해보겠다는 심산이다.
◆구제금융, 안 받는 게 상책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유럽 최대은행 HSBC가 런던 금융가 카나리워프에 위치한 본사건물을 포함해 전 세계 HSBC 랜드마크 빌딩 세 곳을 매각할 방침이라고 영국 선데이타임즈를 인용해 보도했다.
매각이 예정된 부동산은 ‘HSBC 타워’라고도 불리는 45층짜리 ‘8캐나다 스퀘어’빌딩을 비롯해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금융 중심지에 위치한 사업본부들이다. HSBC가 이를 모두 매각했을 때 대략 39억6000만 달러의 현금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HSBC가 부동산경기침체기에도 불구하고 랜드마크 건물들을 선뜻 내놓는 것은 구제금융만큼은 어떻게든 피해보겠다는 의지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런던과 뉴욕의 부동산 시가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 40% 하락, 건물을 매각하기에 좋은 시점이 아니다.
비슷한 이유로 영국 대형은행 바클레이스는 지난주 자산운용부문 아이셰어스를 44억 달러에 CVC캐피탈에 넘겼다.
바클레이스는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로이즈 뱅킹 그룹 등 경쟁사 보다는 부실채권 규모가 작고 재무구조 역시 비교적 탄탄한 편이다. 이 때문에 정부 금융지원과 이로 인한 경영간섭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 지원을 받은 로이즈 은행과 RBS가 핵심 자산 자기자본 비율을 각각 14.5%와 12.4%까지 끌어올린데 반해 바클레이스는 6.7%에 머물러 있어 구제금융의 압박을 받아왔다. 시장에서는 바클레이스가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아이셰어스를 매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제금융받은 은행, ‘당장 갚겠다’
기업들이 자금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정부지원을 외면하는 이유는 그에 수반되는 경영간섭과 구조조정의 압력 때문이다. 각종 규제에 시달려야 될 뿐 아니라 정부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고 국유화된 미국 모기지업체 프레디맥의 데이비드 모핏 최고경영자(CEO)는 수익성과 정책협조 사이에 갈등을 겪다 지난달 초 퇴임했다. 백악관은 제너럴모터스(GM)에 거액의 혈세를 쏟아붓는 대신 릭 왜고너 CEO의 사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정부 간섭에 부담감을 느낀 일부 은행들은 조기 상환에 나섰다. 골드만삭스가 최근 신주발행을 통해 작년 10월 백악관으로부터 지원받은 100억 달러를 갚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웰스파고와 노던트러스트도 서둘러 정부의 구제금융을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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