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기준 완화 확산 "뭘 믿고 투자하나"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들의 기업회계기준 완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것이 자칫 회계장부상의 착시효과에 그쳐 투자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미국 회계기준위원회(FASB)는 지난 2일(현지시간) 모기지담보부증권(MBS)를 포함한 증권에 한해 보유자산의 가치를 시가가 아닌 기업이 독자적으로 만든 모델이나 추정치를 1분기 재무제표 작성부터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안에 승인했다.

완화된 회계기준이 적용되면 MBS 등의 시가가 떨어졌을 경우 MBS를 보유하고 있는 씨티그룹같은 은행들은 MBS를 팔기 전까지는 평가손실을 손익계산서에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

엄청난 부실을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씨티그룹이 지난 1, 2월에 갑자기 순이익을 냈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근거도 바로 이 회계기준 변경을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시장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의 대형 금융기관에서는 시가평가 회계기준 완화 조치를 이용해 파생상품 투자에 따른 손실규모를 대폭 축소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6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2008 회계연도 결산과 연차보고서 결과, HSBC·도이체방크·BNP파리바·UBS 등 유럽 10개 대형은행이 파생금융 상품의 보유목적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시가평가 회계기준을 완화해 손실액 가운데 200억달러 가량을 축소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100여개 국가에서 통용되는 회계기준을 주관하는 국제회계기준심의회(IASB)는 금융 위기로 일부 금융상품의 시가 산출이 곤란하다고 판단해 이처럼 시가평가 회계기준을 완화했으나 은행들이 편법을 쓰는 바람에 오히려 취지가 바랜 셈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회계장부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며 회계기준 완화가 오히려 은행의 투명성을 떨어뜨려 투자심리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기준에 맞춰 회계기준을 변경키로 한 일본은 기업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유가증권보고서에 경영상의 리스크나 대응책을 확실히 명기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증자를 통해 채무초과를 즉시 해소할 수 있는 경우나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아 자금난이 해결되는 경우는 기업에 기업실적 전망치 공시를 생략하도록 하는 등 회계기준을 사실상 완화해 이번 2008 회계연도 결산부터 적용키로 했다.

한편 헤지펀드의 대가인 조지 소로스는 이와 관련, "위독한 환자에게 인공적인 생명 연장 장치를 통해 의미없는 삶을 연장하는 행위"라며 비판했다.


배수경 기자 sue68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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